나 스스로에게도 임신을 인지시키는 것이 필요했던 임신 1~2개월의 이야기
언젠가 미리 잡아놓은 전 직장 동료와의 저녁 식사가 있던 날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선약들을 모두 취소하던 차였는데 취소하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한창 난임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때, 주변의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게 아이 계획을 악의 없이 물어보던 사람들이었다. 술김과 홧김에 저 난임이래요, 하고 더 이상 나에게 임신과 관련된 그 어떤 걸 묻지 않았으면 하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응수했는데, 오히려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위로해주던 동료들이었다(나보다 더 많은 인생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해주는 위로는 깊이와 크기가 달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 지금의 이 불확실함을 말한다고 한들 이해를 못 해줄 사람들도 아니었다.
퇴사 후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반가운 얼굴로 그간 잘 지냈는지를 물어오는 안부에 예고 없이 임신을 알렸다. 사실은 술을 마실 수 없다는 면피용으로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하려던 의도였는데 선배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다정함을 보니까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이미 초등학생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배가 나를 가만히 안아주면서 삶이 많이 바뀔 거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이 달라질 거다, 너무 축하한다,라고 해주는 그 다정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글핑글 돌았다. 감격스럽다, 와는 다른 감정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격렬하게 변화하는 호르몬을 탓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렇게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임신을 말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모든 게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나에게 임신을 알렸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독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해서는 나 스스로에게도 놀랄 만큼 굉장히 무심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임신을 알리면 의례적인 축하를 건네는 게 전부였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머리로만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상으로라도 아이와의 어떤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축하한다는 말이 전부이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만남이 줄어들면서 임신을 알릴 기회도 줄어들기도 했지만 사이버 세상에서 메신저를 통해 굳이 말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임신 8주쯤 되어 가는 시점이 되자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나의 신변에 변화에 대해 말해줘야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가 싶다가도 아직은..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다. 여전히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끊임없이 나를 닦아세워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자꾸만 조심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엉겁결에 흘러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나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을 쯔음, 둘도 없는 친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기로 한 날이 닥쳐서야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로 임신 사실을 전하게 되었다. 가서 먹을 음식과 술을 카트에 잔뜩 담던 내 친구들도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단어가 맞는 지를 재차 묻다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서는 마트 한가운데에서 나를 대신하여 울기까지 했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오열 폭열을 하던 애들이었는데 거짓말 같은 나의 임신 소식에도 웃다 울다가 결국 마트 한가운데에서 얼싸안고 펑펑 울어버렸다. 인생의 어떤 단계들이 우리를 지나갈 때마다 지금처럼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쏟아내는 모양.
초를 켜면서도 울고 초를 끄면서도 울고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울었다. 분명 울 일이 아닌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3주를 흘려보내고 난임과 졸업 후 산과에서의 첫 진료가 있던 날이었다. 매번 난임과가 있는 층을 가다가 처음으로 산과가 있는 층에서 대기를 하니 보이는 풍경도 내 마음도 사뭇 달랐다. 전에 없던 긴장이 생기면서 첫 진료에서 어떤 걸 물어봐야 할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아 초조하게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난임과 졸업 전 마지막 진료에서 임신확인서에 찍힌 날짜가 변동될 수도 있고, 초음파에서 피고임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흡수될 수도 있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산과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해주었던 말들 중, 무엇도 산과 담당의에게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그래도 난임과에서 전과를 한 것이니 담당 선생님의 어떤 위로나 격려를 기대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긴장되고 불안한 임신 초심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사무적으로 느껴졌던 첫 진료에 실망을 하고 결국 담당 선생님을 변경하였다. 앞으로 4주 후의 진료를 예약하면서 새로 바뀔 선생님이 우리와 잘 맞는 분이기를 바래보았다.
그렇게 임신을 인지한 첫 달은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함과 이 불확실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임신을 알리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임신을 인지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달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