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의 일이다. 요즘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데, 코치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전에도 여러 번 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사무적으로 필요한 말만 하고 끊었다. 이 날은 유난히 통화가 길어졌고, 코치는 내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 뭔지, 결혼, 소개팅 등의 잡다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내게 물었다.
"신치 씨는 어떤 사람 좋아해요? 연예인 중에 한번 얘기해 봐요."
"네? 저는 얼마 전 해를 품은 달이란 드라마에 나왔던 김수현 같은 사람이요."
"주변에 그 정도의 사람은 없는데, 혼자 살아야겠네. 저는 그 이상형의 몇 퍼센트 정도 돼요?"
"글쎄요. 70%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 순간, 이 코치에게 함께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연애가 하고 싶은 요즘이긴 하지만, 이 코치란 사람은 엄마와 매주 보는 사람이고, 괜히 사적인 관계로 얽혔다가,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었기 때문. 10여분 동안 전화통화를 하다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몇 초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코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신치 씨, 테니스 잘 가르쳐줄 테니까,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와요. 그럼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 네. 그러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잘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다시 사무적인 대화로 통화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이상하게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났다. 마치 헤세가 격정의 키스를 나누었던 그녀가 집에 가려는 그를 '현명하게 굴라'며 붙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차를 타고 나가는데 알 수 없는 허탈감에 빠져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서 물끄러미 집에서 쇠어 나오는 불빛만을 밤새 지켜봤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그 사람과 주고받았던 문자를 보며, 문자를 보내려다가 말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던 중에, 다음 달 회비 문제로 다시 한번 전화 통화를 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그 전보다 훨씬 더 사무적으로 전화를 하고 끊었다.
금요일 오후 논현동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왠지 불금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동네에 사는 선배에게 맥주 한잔 하자는 문자를 보냈으나, 퇴짜를 맞았다. 그때 다시 그 코치가 생각났다. 그 사람에게 호감이 있어서인지,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였는지 계속 생각이 났고, 결국 나는 문자를 적었다.
"코치님, 소개팅 얘기 아직 유효한가요? 그러면 저 소개팅해 주세요~"
하지만 곧 지워버렸다. 소개팅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가 진짜 소개팅을 해 준다고 하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가까이에 살면, 가끔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코치님, 혹시 사는 동네가 어디세요?"
"어!! 양재동이요. 왜요??"
"아. 그러시구나. 그냥 근처 살면 친하게 지내려고요. ㅋㅋㅋ"
"어디 사시는데요?"
"봉천동이요."
"^^ 친하게 지내요~"
"ㅎㅎㅎ. 네! 다이어트 끝나면 연락 주세요. 맥주나 한잔 해요~"
"ㅎㅎㅎ 네~"
이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문자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졌다. 아마 이 문자마저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헤세가 다시 그녀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녀의 집 앞에서 세 달간이나 서성였던 그때와 같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부쩍 연애를 하고픈 마음이 드는 요즘. 내게도 '베아트리체'와 같은 존재가 눈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테처럼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의 일생에 영향을 준 '베아트리체'가 될지, 에밀 싱클레어처럼 방황의 중간에 잠시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지만 곧 다시 나에게로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줄 '베아트리체'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단테보다는 싱클레어에게 나타나 주었던 베아트리체와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는 어떤 베아트리체를 찾고 있는 것일까? 오늘 테니스를 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배우자 고르는 4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돈을 보고 선택하지 말 것,
두 번째는 그 사람의 명예나 지위를 보고 결정하지 말 것,
세 번째는 오래 봐온 사람들 중에 찾아볼 것,
마지막은 인생의 목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
이었다. 들으면서 나 역시 공감했다. 그저께 친한 선배를 만나서 술을 한 잔 하는데, 그 선배가 "나도 연애 안 한지 오래됐어. 요즘은 돈을 못 벌고 있어서 누굴 만나지를 못하겠어. 너 같으면 나 같은 사람 만나겠냐?" 그때 내가 대답했다. "선배? 괜찮지. 좋은 사람이야. 돈? 돈이야 뭐, 내가 벌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물론 평생을 돈도 안 벌고 한량으로 사는 사람은 문제지만, 지금 당장 취업이 안된 상황이고,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지금 당장 돈이 있고 없고, 혹은 많고 적음은 내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명예나 지위 역시 내게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런데 그 선배를 생각해 봤을 때, 마지막 질문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남자와 세상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너무 싫은 여자. 만날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오래 알아 온 사람들 중에 괜찮은 사람들이 많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Amor Amatur 사랑하는 것이 곧 사랑받는 것"이라고 적어 놨더니, 어제는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요즘 사랑하고 있나?"
"사랑하고 있지. 나 자신을. 연애하고 싶다."
"이젠 연애하고 싶냐? 외롭구나?"
"응. 그런가 봐."
"꼬이는 남자들은 없냐? 너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자나."
"묘한 매력. 꼬이는 사람들이 이상해. ㅋ"
"멀쩡한 사람들도 종종 있었잖아. 종종."
"그러게 아주 가끔"
"기회 올 때 잡았어야지."
"앞으론 잡아 봐야지."
"항상 떠나고 나면 후회한다니까."
"내 말이."
"너 주위에 잘 찾아봐 있을 거야. 인연은 멀리 있지 않다더라."
"그래. 가까이서 찾아봐야지."
"이런 난 진해라서 멀리 있는데 안타깝구먼. ㅋㅋㅋ"
"ㅋㅋㅋㅋㅋ 대박. ㅎㅎ"
"넌 대박을 놓친 거야."
"그렇다고 하자. ㅎ"
"아니다. 꼬시러 갈 테니 넘어와라. ㅋ'
"됐다. ㅋ"
이렇게 찐 우정의 남사친과의 연애에 대한 짧은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오래 알아 온 사람들 중에 괜찮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인데, 네 번째 조건이 맞았던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같은 곳을 보고 갈 수 있는 사람." 나는 어디를 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완전히 같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어떤 부분들을 조금은 양보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대상이 될 '나'보다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나'를 먼저 사랑해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베아트리체'를 기다린다.
2012년 6월 12일 쓰다. 이 즈음 '같은 곳을 보고 갈 수 있는' 지금의 짝꿍을 만나 사랑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