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퇴사

월급의 노예, 자유를 꿈꾸다

by 라프
#월급의노예 #자유를꿈꾸다


틀에 박힌 성냥갑 같은 사무실에서 답답하지만 회사와 월급이 주는 안락함과 숨 쉴 수 있는 하늘과 같은 자유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 고민하다가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원래의 계획은 새로 시작하려는 일을 3개월간 짝꿍이 맡아서 하고 안정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내가 회사를 나와서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었는데 교육을 받고 한 두 번 해보니 이게 다른 일과 병행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3년간 다닌 회사에서 나올 퇴직금으로 3개월을 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을 찾아 입사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함께 일한 곳에 '나 이제 그만하겠소'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월요일 휴가를 보내고 회사에 출근하는 화요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짝꿍에게 얘기했다.


나 오늘 퇴사한다고 얘기할 거야!


짝꿍은 내게 용기를 주면서 잘하고 오라고 다독여주었다. 그런데 새로 뽑은 신입사원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일을 가르쳐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정신을 좀 차려보니 그제야 퇴사하겠다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때부터는 '언제 어떻게 퇴사한다고 얘기할까'하는 고민에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말하지 못한 채 집으로 와 버렸다.



지금까지 총 사회 경력은 14년이 조금 안 된다. 그 사이 여덟 번의 퇴사를 했다.


# 첫 번째 퇴사

첫 직장인 보험회사에서는 사실 나의 의도로 퇴사하기보다 3개월 연속 회사에서 정해놓은 최저 실적 미달성으로 인해 퇴사를 권고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은 이들이 오히려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막상 퇴사하게 된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사람과 대면해야만 하는 일인데 사람을 만나기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해 심리 상담까지 받는 상황이었는데 저절로 그런 상황이 종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퇴사 권고를 받고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면서는 오히려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얼굴 표정도 꽤 밝아졌다.


# 두 &세 번째 퇴사

그 뒤에 일하게 된 스타트업은 입사 5개월 만에 투자 유치에 실패해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마지막 월급을 노트북으로 대신 받고 퇴사를 했고, 라임을 팔기 위해 모히또 레시피를 함께 팔았던 라임 팩토리는 같이 일한 지 4개월 만에 회사에 큰 변화가 있어 퇴사했다. 라임 팩토리 사장님은 아주 가끔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는 중이다.


# 네 번째 ~ 여섯 번째 퇴사

그리고 6개월가량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기업에서는 당시 담당 임원이 워낙 별난 사람이었고 이미 비서를 세 번 이상 갈아치운 상황이라 퇴사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1인 기업가를 위해 만들었던 공간 '크리에이티브 살롱 9 카페'는 오픈 1년 3개월 만에 다른 모임에 카페를 넘기고 문을 닫게 되어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살롱 9에서 만난 인연으로 일했던 '1인 가구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한 어슬렁 정거장 역시 카페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을 동시에 하는 곳이었는데 경영 악화로 인해 입사 8개월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 일곱 &여덟 번째 퇴사

여러 달의 방황 끝에 입사하게 된 장애인 연극을 기획하고 공연을 올리던 직장에서는 1년 1개월 정도 일을 했다. 매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여러 가지 사업비를 따내어 운영비를 유지하는 이 곳도 내가 퇴사할 시점 즈음이 연말이라 자금이 부족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퇴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행히 어렵지는 않았다.

이후에 지인의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을 하다가 명상요가 센터에서 의뢰받은 외부 출강인 모 아파트 주민 대상으로 명상요가 수업을 6개월 정도 진행했다. 애초에 예정되었던 기간이 끝나 출강을 마치고 한 달 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입사했고, 내가 했던 일 중에는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사무 업무를 할 수 있었던 나의 첫 회사. 몇 달 전부터 '이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영업팀 직원이 그만두면서 온라인 마케팅이 내가 맡은 주 업무였지만 연재 기사까지 담당해서 쓰고 있던 내게 영업팀 업무까지 몰리니 회사 다니는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고 덕분에 퇴사 일정이 앞당겨지게 되었다.

크게 호흡을 한 번 하고, 부장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부장님 시간 되시면 미팅 잠깐 하시죠.


그리고 회의실에 마주 앉은 부장님과 나. 눈을 마주쳤고, 얘기를 했다.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부장님은 큰 동요 없이

"왜? 뭐 다른 거 하게?"라고 물었다.


"네. 개인적으로 사업을 좀 해보려고요."


내가 카톡으로 말을 하는 순간 오랜 경험을 토대로 '퇴사 얘기를 꺼내겠구나' 직감했다는 부장님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말을 해야지'하고 생각만 하며 마음 졸이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지난 며칠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평소에 '퇴사하면 뭐하냐?'라고 서로의 고충을 얘기하곤 했던 사이라 다행히 부장님은 퇴사에 대해 굉장히 쿨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퇴사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인수인계 모드 시작이다.
아듀, 어쩌면 나의 마지막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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