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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Jan 01. 2022

다들 선배를 무서워했어요

두 학번 아래의 후배를 졸업 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댓글을 달기 시작하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낸 후배였다. 그러다가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게 되었는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는 취업하면 차라도 한잔 하자고 말했다. 그 말이 여러 번 반복되자 나는 취업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2021년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두고 성사되었다.


그녀를 만난 샤로수길 핫플 '몽중인'


그녀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는데, 재학생 시절 카페에서 단 둘이 대화를 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해외여행, 어학연수 등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라떼는 말이야'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콸콸콸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 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의 오지랖'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와의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우리 두 사람. 회사 사람들이나 페이스북에 있는 안부가 궁금한 선배들에게 연락을 해 보지만 진짜 얼굴 보자고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그녀는 내가 왜 자신을 보자고 했는지 궁금했다고 말을 꺼냈다.


"아. 나는 네가 보자고 하길래. ㅎㅎㅎ"

"그러셨구나. 그냥 한 말이었는데. 하하하"


아. 그랬구나. 그냥 '밥 한번 먹자' 이런 거였구나. ㅎㅎ


"사실 네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내용들이 좀 어두워 보이고, 힘든 것 같아서 얼굴 한번 보고 싶었어."


사실이었다. 그녀의 타임라인에는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느껴졌고, 마스크를 끼고 있는 프로필 사진도 왠지 모르게 어두워 보였다. 그래서 얘기나 들어볼까 하고 만나자고 한 것이다.

학창 시절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사실 우리 동기들이 언니 무서워했어요."

"아, 그랬어? ㅎㅎㅎ 내가 좀 그랬을 거야. 동아리 후배들도 나 무서워했어."

"네. 그리고 언니가 우리 동기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데, 늘 만나면 여성문제에 대해 강요하듯이 했고, 듣고 싶지 않은데도 엄청 많은 얘기를 했어요."


그랬구나. 그때 그 시절이 전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 후배들에게 강요하듯이 얘기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아마 이런 기억 때문에 후배는 만나자마자 '언니가 왜 만나자고 한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약간은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내가 또 무언가 조언하려는 듯한 말을 던지자


"아, 저는 이미 알고 있으니 얘기 안 해주셔도 돼요."


라고 칼 같이 잘랐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경계심서서히 풀렸고,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주고받을  있게 되었다. 방역 패스로 인해 문을 닫아야 하는 9시를 30여분 남겨두고 그녀는 내게  다른 질문을 했다.


"언니가 명상을 배우고 있는 곳의 스님이 최고라고 하셨는데, 다른 곳도 다 다녀 보신 건가요? 다 다녀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언니 말처럼 좋은 곳이라면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서 이미 많이 찾아왔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곳에서 언니 인생을 허비한다는 게 조금 안타깝네요. 차라리 다른 곳에서 무언가 펼쳐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 역시 그녀가 내게 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답을 찾진 않았다. 막상 눈앞에서 그녀가 질문을 하자 그 답을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다 다녀보진 않았지. 나는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야. 경제적 자유. 직업적 자유, 주거의 자유.. 다양한 자유가 있지. 그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 감정,  마음을 자유자재로   있는 '이야. 니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이 힘든 상황의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그 힘든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처럼 나에게 어떤 힘든 상황에도  대처할  있는 그런 유연성과 을 기지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자유라고 생각해. 지금 내가 배우고, 배워서 가르치고 있는 명상요가는 일상에서  마음과 감정을 자유자재로   있는 방법을 훈련시켜주지. 그것도 아주 쉽게."


그녀가 얼마나 공감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 그녀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걸 보면, 어느 정도 수긍했거나 아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가족 통화에서

그녀를 만난 다음 날 매주 진행하는 가족통화에서 후배와의 만남을 얘기했다.


"어제 정말 몇십 년 만에 후배를 만났는데 말이야. 내가 무서웠데. 여성문제에 대해서 강요하고 듣고 싶지 않은데 계속 얘기해서 그렇다고 하더군."


그러자 동생들은 바로 이런 반응을 보였다.


"뭐야.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였어? 뭐 하나에 꽂히면 남이 관심 있든 없든 예나 지금이나 늘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구먼."


여성문제에 심취해 있을 때는 그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고, 명상에 꽂히자 보는 사람마다 명상요가를 강요하듯 늘 권해왔다. 며칠 전 지방에서 서울에 일이 있어 서울에 온 사촌오빠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는데, 명상요가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 자리를 잠깐 비우겠다고 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따가 사촌오빠 만나러 잠깐 다녀올게요."

"네, 그러세요."

"만나면 이모랑 이모부 온라인 명상요가 수업 들으라고 얘기해야겠어요."

"설마 만나는 사람마다 요가 얘기를 하는 건.. 아니죠 ㅎㅎㅎ?"

"ㅋㅋㅋㅋㅋ 맞아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안 남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좋았던 것이 남들에게도 좋을 거란 생각이 강했고, 내게 좋았던 것을 남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관심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절대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주변에 남아 있고, 여전히 나를 만나주는 친구들이야 말로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성인군자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쓴 일기를 우연히 보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수를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명상요가에 대해 그만 좀 얘기해 무슨 사이비 종교 같아." '


이 얘기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는 내가 권해준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친구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결같았던 내 오지랖의 민낯을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좀 쓰려왔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게 되어서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고, 과거의 나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아무리 좋아도 누군가에게 권하는 것을 자재해야겠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말씀도 상대방에게 가 닿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대의 상황과 상태를 잘 살피는 마음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불혹에 접어든 2022년에는 되도록이면 누구를 만나든 말은 최대한 아끼고, 가슴과 귀는 조금 더 활짝 열어 두어야겠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는 한해 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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