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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

by 라프

혼자만의 시간이 진심으로 필요했다. 지난 10년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러는 동안 내게 무슨 감정들이 일고 스러졌는지, 다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펼쳐지면서 마음이 어떻게 작용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가게 된 것인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정리하고 알아차릴 필요가 있었다. 마음속에 꽉꽉 눌러 담겨 있다가 터져 나오는 불편한 감정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이다.


대문자 I인데 평생 함께 할 짝꿍을 만나고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출퇴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시간이, 명상센터에서 일을 할 때는 수업과 다른 선생님이 없을 때가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내게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 평소 나는 말이 없는 편이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도 말을 하기보다 주로 듣는 사람인데 늘 함께 있는 짝꿍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때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편이지만 그것도 꽤 긴 시간을 생각하며 곱씹은 뒤에 얘기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편이다. 글을 쓸 때는 내게서 영혼이 빠져나와 멀리서 나를 관찰하듯이 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말을 엄마가 경청하고 공감해 주듯이 내 마음속에 울고 화내고 떼쓰는 아이의 마음을 잘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아이가 들려주는 대로 한 자 한자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쓰다 보면 불편한 마음의 도화선이 된 사건, 그때의 감정을 일으킨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듯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 감정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면 불편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래서 제주에 와서 맞이한 첫 주말에 짝꿍이 서울에 간 사이 노트북을 챙겨 도서관에 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쓰고 또 썼다. 내게 일어났던 일, 각각의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자세하게 적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는 상황이 발생할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 있다.


'억울한 마음,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들면 상대방이 꼴도 보기 싫어지고,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나 분노의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 내 마음도 이랬다. 화를 냈던 대상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평생 일궈 놓은 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대체 이 감정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찾는 것이었다. 이 감정이 해결되어야 무엇을 하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몇 주만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누군가를 향했던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마음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불만족스럽고 비난하려는 마음에 대한 화살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리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제 진짜 제주를 느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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