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전공자의 영어공부방 오픈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고 싶었다. 제주에 오자마자 추석 연휴여서 짝꿍의 부모님이 여행 오셨다. 서울에서 이사한 지 7개월 만에 제주로 다시 이사 온 내게 아버님이 물으셨다.
"다음엔 어디로 이사 갈 거냐?"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아버님 여행 가고 싶은 곳으로 갈게요~"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진심이었다. 회사나 돈 버는 일 때문에 한 지역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일도 지역 상관없이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5년 전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수학 학원 일을 고사한 뒤로 몇 번의 면접을 더 봤다. 그리고 아이들을 온라인으로 가르치는 일에도 지원했다. 그중 한 군데는 웅진싱크빅이었다. 제주시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미팅을 했다. 선생님은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 주셨다. 초기 비용은 들지 않았고, 공부방에 필요한 집기는 회사에서 지원을 해 준다고 했다.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귤을 파는 매장에서 한 달 정도 일을 하기도 했다. 가까워서 오래 일하고 싶었지만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계속 남을 욕하고, 부정적인 말이 끊이지 않는 하는 사장님과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 신체적 폭력보다 언어폭력이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느꼈던 한 달이었다.
그렇게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공부방에서 영어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수학을 전공했지만, 영어를 좋아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다. 40대에 매일 하기로 마음먹은 것 중 하나가 꾸준한 외국어 공부였다. 10년 뒤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면 내가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면접을 보러 갔다. 영어공부방을 오픈하게 되면 기존의 아이들 중 10명을 인수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짝꿍과 상의한 뒤 한번 해 보기로 결정했다.
공부방으로 사용할 공간의 보증금과 월세, 책상과 책장 등의 집기, 공부방에 비치할 전집 등 초기 비용이 꽤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이들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볼 생각에 왠지 가슴이 설레었다.
사실 제주도 내려오기 직전에 사회복지사와 평생교육사 실습을 마치고 두 자격증을 취득했다. 제주에 와서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찾아봤다. 노인요양병원, 청소년 심리센터 등 다양하게 알아보았다.
내게 기회가 오는 대로 일을 했던 30대와 달리 40대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일을 정하고 싶었다.
'지금 현재 내가 지원하고 해 볼 수 있는 일 중에서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아니면 내가 더 하기 싫거나 어려운 일은 뭐지?'
공부방을 계약할 때쯤 노인요양시설에서도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아픈 노인들을 매일 보는 것 vs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나는 타인이 성장하는 것을 돕고, 그 결과가 나타나는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어공부방을 운영해 보기로 결심했다.
40대가 30대보다 좋은 이유는, 다양한 경험을 한 뒤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싫어하는 일과 못 하는 일', '더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