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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와서 시작한 일상들

by 라프

10년 전의 제주와 지금의 제주는 많이 다르다. 자연의 비율이 컸던 서귀포시에도 아파트와 빌라 등 많은 건물들이 생겼다. 자연 속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나와 짝꿍은 다양한 조건의 여러 집을 보다가 마당이 예쁜 지금의 단독 주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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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집이 몇 채 안 된다. 옛날 군사정권 시절에 정치인들이 별장으로 쓰던 집들이라 집의 외부나 내부 모양이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지금은 대부분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 온 지 몇 십 년씩 된 분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 가면 텃세가 있다는데 우리는 이사 온 첫날부터 지금껏 그런 텃세는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무, 감자, 고등어, 김치 등 늘 챙겨주시는 이웃분들 덕분에 아주 훈훈한 시골 인심을 느끼며 사는 중이다.


이웃집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있어 혼자 있을 때도 안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가 정말 좋은 이유는 40분간 러닝을 하거나 산책을 해도 사람이나 차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제주도로 이사 와서 짐 정리가 끝날 무렵 짝꿍은 건강을 위해 매주 세 번은 러닝이나 걷기를 하고, 다른 날은 요가나 근력운동을 하자고 했다. 집에서 나와 왼쪽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여러 집들을 지나 옛날에 말에 물을 주던 수산 한 못이 나온다. 못까지 갔다 오면 40-50분 정도 걸린다.


집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걸으면 논밭뷰가 펼쳐진다. 겨울에는 무, 봄에는 메밀 등 다양한 작물이 시시각각 자란다. 노지귤밭, 하우스 귤밭도 있다. 작은 도로를 하나 건너 계속 걷거나 뛰다 보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재활용센터가 나온다. 제주도는 곳곳에 '클린하우스'란 이름을 붙여 놓은 건물이 있다. 일반쓰레기부터 각종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등을 버리는 곳이다. 연중무휴로 동네 어르신 몇 분이 돌아가면서 클린하우스를 지킨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너무 깨끗해서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러닝이나 걷기를 할 때 클린하우스가 우리의 반환점이다. 거기에서 돌아오면 총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처음에는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를 목표로 런데이 앱을 켜고 러닝을 시작했다. 지난가을에 이사 왔기 때문에 시작한 뒤로는 꽤 꾸준히 달렸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한 번, 두 번 빠지기 시작하더니 겨울이 훅 지나가 버렸다.


봄이 와서 달리기 좋은 날씨가 되자 우리는 다시 달리자며 손을 잡고 나갔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러닝이 뜸해졌다. 대신 공부방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에 지는 해와 노을을 보며 산책을 하곤 한다.


이사 온 초반 일요일에는 근처 오름을 정복해 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백약이 오름, 용눈이 오름, 유건에 오름, 붉은오름, 다랑쉬 오름 등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하지만 짝꿍은 오름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일요일 산책할 장소를 몇 군데 정해 놓자고 했다. 둘 다 비자림을 좋아해서 일요일마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비자림으로 산책을 갔다. 그러다 가끔 멀리 있는 서귀포 자연휴양림, 절물 자연휴양림 등을 찾아가기도 했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좋은 건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는 점이다. 심지어 서귀포시나 제주시로 나갈 때는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는데 거대한 제주의 자연 속을 달리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집에 있을 때는 늘 새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잠시 고개를 들어 둘러보기만 하면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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