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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 CCTV를 설치하다

by 라프

"지갑을 훔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당신이 잘못했네"


어린 시절 수영장에 지갑을 놓고 왔다는 아빠에게 엄마가 한 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이 내게 꽤 강렬하게 남아있다. 지갑을 누군가 훔쳐갔다면 그 훔쳐간 사람도 잘못이지만, 훔쳐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든 아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얘기했던 거였다.


공부방에는 컴퓨터실이 있다. 처음에는 다른 공간에 컴퓨터 책상을 양쪽 벽으로 붙였고 아이들이 등을 맞대고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원래 개인 사무실로 쓰려던 방을 공부방에서 다 활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컴퓨터를 옮겼다. 큰 책상 하나에 컴퓨터를 엇갈려 놓으면서 모니터 화면이 베란다 쪽을 향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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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방의 문 쪽에 있는 3개의 모니터는 거실의 내 자리에서도 모니터 화면이 다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딴짓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반대쪽은 벽에 가려져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뒤쪽이 베란다라서 그쪽에 앉은 아이들만 왔다 갔다 하며 서로의 모니터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쪽에 앉은 두 명이 작당모의를 하고 서로 눈감아 주기만 하면 충분히 딴짓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3학년 아이들 수업 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바탕화면에 음원 파일이 없어요."


영어 원서를 따라 읽을 때 필요한 파일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나는 자리로 가서 휴지통을 열었다.


'아니, 이게 뭐지?'


휴지통에 버려진 음원과 함께 게임 설치 파일이 있었다. 함께 보던 아이들은 평소 즐겨하는 게임이어서 그런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본인들이 아니라는 걸 바로 어필했다.


"뭐야, 누가 이런 걸 깔아놨어?"


나는 해당 파일을 지우기 전에 삭제한 파일의 날짜와 시간이 적힌 걸 사진으로 찍어놨다. 6학년들이 수업하는 시간이었다. 나와서 3학년 아이들에게도 눈을 감긴 채 물어봤다. 게임을 깔거나 접속한 적이 있냐고 말이다. 모두 없다고 대답했다.


다음 시간, 6학년 두 명에게 물었다. 다행히 둘 다 게임을 깔았으며, 한 명은 한 번 접속했고 다른 한 명은 게임을 설치하기만 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다시는 게임을 설치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몇 주 뒤 다시 게임을 설치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서 안쪽 컴퓨터 모니터가 잘 보이는 위치에 CCTV를 설치했다. 일요일에 설치하고 월요일이 되었다. 4학년들이 있는 첫 번째 시간과 3학년들의 두 번째 시간에는 아이들이 말도 하기 전에 설치된 CCTV를 발견했다. 그리고 평소에 딴짓을 하며 함흥차사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도 공부만 하고 바로 컴퓨터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6학년들이었다. 이 두 녀석은 CCTV를 설치한 줄도 모르고 평소대로 안쪽 자리에 앉아 딴짓을 했다. 나는 지켜보면서 몇 번을 참다가 결국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CCTV 안 보이니? 딴짓 그만하고 나와라."


그제야 뒤돌아서 새로 설치한 CCTV를 보는 두 녀석. 나는 저녁에 아이들이 딴짓을 했던 순간이 녹화된 영상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기 5분 전, 다른 아이들은 모두 보내고 둘만 교실에 남겼다. 전날 찍은 CCTV 영상을 보여줬다.


뭘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컴퓨터에 카메라가 있어서 켜 봤다고 얘기했다. 둘 중하나는 컴퓨터를 다른 하나를 사진을 열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두 컴퓨터에서 게임 파일이 실행된 날짜를 사진으로 찍었던 걸 보면서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얘기해 줬다. 두 사람이 지난번 게임 파일 설치한 걸 얘기한 이후로 다시 게임을 깔고, 실행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한 명은 파일을 지우려고 했던 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런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는 함께 할 수 있지만, 거짓말하는 아이들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 마지막 기회니 솔직하게 얘기해."


그러자 둘 다 한 번씩 게임에 접속했지만, 게임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진실인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다면 함께 공부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아이들도 수긍했고, 다행히 이번 사건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아빠에게 얘기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한참 놀고 싶은 나이에 컴퓨터를 그렇게 배치한 내가 애초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환경을 만든 내 책임도 있다고 말이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온 아이들. 두 녀석에게는 앞으로 안쪽 자리 착석 금지령을 내렸다. 아이들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녀석들을 보니 또 마음이 짠했다.


'그동안 몰래 딴짓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하고 말이다. 예전에 어떤 기사에서 한 범죄자의 말이 생각났다.


"처음 도둑질을 했던 그때 엄마가 나를 크게 꾸짖어 주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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