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은데, 딱 하나가 문제네..
제주로 이주를 결심하고 지인의 아내분이 제주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짝꿍이 그분과 통화를 했다. 마침 그 사업이 제주도에서도 진행하기로 결정됐다고 했다. 학교 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으로 코딩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교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었다.
'저기에서 일을 해 볼 수도 있겠구나.'
사실 우리가 제주 이사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온라인 사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과 후 코딩 수업에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박스도 우리가 납품하고 있었다. 제주도로 이주 온 사람들에게 몇 번 비슷한 말을 들었다.
"돈만 벌 수 있으면 제주가 정말 살기 좋아요."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나는 제주에서 출퇴근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기존에 하고 있던 온라인 재택근무와 간식 박스 일은 두 사람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야 할 정도의 업무량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24시간 짝꿍과 붙어 있는 시간을 줄이고 각자 일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근에 올라오는 일자리를 수시로 확인했다. 관광지이다 보니 숙박업, 음식점, 카페 등의 일자리가 많았다. 일자리는 없고 일할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지, 제주도는 월급이 육지에 비해 적은 편이다. 주 6일 일하거나, 주말을 포함해 주 5일 일하는 곳도 많다. 계속 찾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띄었다.
'수학 강사 모집, 시급 2만 원'
이거다! 전공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학통계 전공에 학생 때는 과외와 수학 학원 강사도 했었다. 아이들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젊은 선생님이라 너무 좋네요"
40대 초반인데 '젊어서 좋다'는 말씀을 해 주시니 뜻밖이었다. 기존의 선생님들이 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셨다. 상담 선생님과 원장님까지 만났고 1시간 넘게 면접을 봤다. 나도 좋고, 선생님들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단 하나, 거리가 문제였다. 제주 동쪽 끝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학원까지 거의 40km 가까이 된다는 것. 운전해서 1시간 정도 가야 했다. 주 5일 매일 왕복 2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걱정스레 다닐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도 그만큼 걸렸는데요 뭘.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과 원장님은 '나중에 이사 오면 되지' 이런 얘기를 여러 번 하셨다.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말을 보냈다. 짝꿍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40km면 부산에서 울산으로 출퇴근하는 거리야."
와... 갑자기 머리에 무언가를 한대 얻어맞은 듯이 띵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멀구나. 지하철로 1시간 가는 건 괜찮은데 운전해서 매일 왕복 2시간을 다니는 건 힘들겠다 싶었다. 결국 너무 아쉽지만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매일 왕복 2시간 운전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도 많이 아쉬워하셨다.
'다음에 학원 근처 올일 있으면 한 번 들려요'
감사하게 이런 말씀까지 해 주셨다. 제주에 이사오기로 결정할 때는 일자리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당근에서 우리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집만 찾았고, 그 집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했다. 그게 성산일출봉 근처였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려고 보니 제주에서 사람과 사무실이 모여 있는 곳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였다. 두 곳 모두 우리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특히 우리 동네인 성산에는 일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40대초반'인 나에게 '젊어서 좋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는 사실이 '제주에서는 일자리를 충분히 구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다시 집에서 가까운 곳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당근을 수시로 열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