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쭐한 마음

by 라프

공부방 마지막 시간대에 새로운 아이가 왔다. 이 시간대는 원래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 주로 공부를 했는데 초등학교 수영부 아이들 시간이 맞아 최근 3학년 A, 4학년 B도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각자의 영어 실력에 맞는 단계를 시작하다 보니 A와 B 둘 다 같은 단계에서 시작했다. B가 공부한 내용을 점검받는데 뒤에서 A가 계속 자신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 영상 수업을 듣고 질문을 하러 오는 B에게 A가 말했다.


"형,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내가 잘 알아~"


다른 아이를 점검해 주다가 그 말을 듣은 나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안 돼. 질문은 선생님에게 하는 거야."


이 순간 '아차' 싶었다. 그리고 앞 시간 4학년들 수업 시간이 아이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 B 영어 잘해요~ C(4학년에 윗단계를 하고 있는) 보다 훨씬 잘하는데. A단계 해도 될걸요?"


라고 말이다. 영어 수업은 3 레벨로 나눠지는데 A와 B는 첫 번째 레벨의 2단계, C는 6단계를 공부하고 있다. 3학년인 A와 4학년인 B의 단계를 달리 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적응기간이라 그랬는지 얌전하고 순응적이기만 했던 A의 태도가 변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A가 '나한테 물어보라'라고 한 말 뒤에는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더 높은 지위에 소속되려는 욕구는 집단 내 우위 구조를 만들고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은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아들러의 열등감-보상 이론에 따르면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과도하게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우월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어쩌면 6학년 형이 있고, 둘째인 4학년 A는 형과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열등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에게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A의 마음속에서는 니체가 말하는 '권력 의지'도 엿볼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이 '힘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여기서의 권력은 '자기 능력의 확장, 우월함의 표현'을 말한다. 타인보다 우월함을 보여 주고 그 위에 서려는 태도는 "자기 긍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타인을 도구화하려는 '건강하지 않은 권력 의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A가 '모르면 나에게 물어보라'라고 말한 것은 얼핏 보면 도움 같으나 '상대의 자율성은 무시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즉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인간 사이의 '도구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말했다. 이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존재이며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렇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과 있다 보니 내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방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경쟁, 우열' 등이 아닌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서로를 대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행동이나 성과가 아닌 '존재와 노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칭찬의 방식을 바꿔봐야겠다.


"말을 잘했어" 보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어."

"문제를 맞혔네" 보다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한 것이 인상적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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