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침묵과 고요 속에 있던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거실에 나와 불을 켜고, 창문을 연다.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보는 것 외의 모든 감각을 열어둔다. 창 너머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 허리, 손목, 목과 어깨 등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하나하나의 긴장을 풀어놓는다.
새가 한 마리가 아니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 공기를 가득 메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 끝에도 늘 긴장감이 남아 있다. 손가락 끝,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다시 한번 숨을 쉬고 내뱉으면서 손끝의 긴장을, 손목의 긴장을, 놓아준다.
옆집은 오랜 시간 공터로 두었는데, 몇 달 전부터 집을 짓고 있다. 농사를 짓는 분이 땅 주인인데 올해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너무 올랐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집을 지을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옆집 공사장 소음도 들려온다. 또 다른 새소리가 공사장 소음에 화음을 넣어준다.
명상을 시작하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이거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 하지만 생각이 한 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명상을 했을 때 고요함을 맛보기란 쉽지가 않다. 명상을 하면서 고요함에 이르면 눈은 감았지만 모든 것들이 오히려 선명해진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나의 온 신경을 쏟았다면,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고요함에 접어들면 보이는 것 외의 모든 감각들을 온전하게 느껴볼 수 있다. 귓가에 닿는 소리들, 들고 나는 숨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 곳곳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긴장하는 곳들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특히 비자림 같은 숲길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서 짝꿍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걸을 때는 살을 스치는 바람,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촉감 등도 더욱 더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에 스마트폰,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시선과 신경,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다. 깨어 있는 시간 중 단 1분 만이라도 눈을 감고 보이는 것 외의 다른 감각들을 활짝 열어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때 나는 왜 그토록 화가 났던 건지, 내 마음은 무엇 때문에 이리도 불안한 것인지, 평소에 자각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도 마치 백성공주의 계모가 마법의 거울에게 물어보면 거울이 대답하듯이 마음속 울림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눈을 감고 나의 감각들에 의지해 글을 써 보았다. 가끔은 이렇게 눈을 감고 글을 써 보는 시간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