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두려운 것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불확실해지는 상태“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 이론을 만든 에릭 에릭슨의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기척을 감지하는 순간 에릭슨의 말처럼 내가 누구인지 불확실해지며 이때 설렘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바로 가던 길을 벗어나는 건 아닐까? “
“이 선택이 잘못된 거면 어떻게 하지?”
변화라는 문이 열릴 때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들로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변화의 문을 열 때 비로소 ‘나를 완전히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열린다. 물론 불안감이 늘 동반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변화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까지 두려워지는 것일까?
사실 변화가 올 때의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두려움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변화는 항상 ‘상실‘이란 녀석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대개 변화를 앞두고 이런 걱정들도 많이 한다.
-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잃을 수도 있어
- 새로운 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 만약 잘 안 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변화를 망설이게 만든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요구하지만, 자아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자아는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때의 안전감과 익숙함은 나를 보호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그 속에 가두기도 한다. 반면 무의식은 ‘성장‘으로 나를 이끌려한다. ’ 이제는 넘어가야 해, 다음 단계로 가야 해 ‘라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의식의 신호를 감지했을 때가 바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 역시 인생에서 끊임없이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했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실행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명상요가지도자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올 때도 그랬다.
가서 먹고살 수는 있을까?
정말 서울을 떠나도 되는 걸까?
새로운 삶,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나에게 과연 다른 가능성이 또 있을까?’하는 의심의 마음이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변화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이미 마음속에서 시작된 일’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막을 수 없고, 막으려 할수록 마음이 심하게 요동친다. 그리고 그 요동이 끝나고 변화를 받아들인 뒤에 나는 문득 깨닫게 된다. 두려움이 사라져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기꺼이 움직였음을 말이다.
변화는 항상 두렵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다.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지나가야 할 때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변화를 만드는 힘은 ‘용기’가 아닌 ‘받아들임’이다.
지금의 삶에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
내 마음이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받아들이는 마음,
익숙함 속에 있는 두려움을 감추지 않고 인정하는 것.
변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 한 걸음은 내 삶의 리듬을 바꾼다.
나는 두려움 등의 감정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감정을 바라보고 수용할 때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실행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한 사람이다. 두려움을 인정하면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고, 그 틈 사이 변화의 바람이 스며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언제나 두렵다. 앞으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 주려고 한다.
“아, 또 변화의 문이 열린 거구나.”
두려움은 내 안의 성장이 준비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무의식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변화 앞에서 계속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며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삶은 그렇게 앞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의 두려움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