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캬닥이 Jan 31. 2020

『종의 기원』, 과학적 논증의 기원

찰스 다윈, 『종의 기원』서평

『종의 기원』은 1859년 출간 이래 48,868번 인용되었다*. 구글이 내놓는 『종의 기원』의 인용수는 이마저도 과소 평가된 것이다. 진화론이 상식이 된 이후 이루어진 생물학 연구는 수십만 회를 넘기 때문이다**. 160년 동안 생물학은 진화론을 토대로 새로 태어났다. 역설적이게도 진화론이 넓고 단단해질수록 책 『종의 기원』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지 않는다. 160년 전 과학책은 당연한 이야기를 구닥다리 논거를 들며 설명할 것만 같다.


DNA 염기 서열로 진화를 좇는 오늘날,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이 헛수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진화론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진화를 설명하는 책은 많지만, 진화라는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사고 과정은 『종의 기원』이 최초이며 유일하다. 현대 독자들이 『종의 기원』에서 얻을 것은 진화론 자체가 아니라 진화를 설명하는 증거를 고르고, 논지를 이끌어가는 다윈의 태도이다. 다윈이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꺼내든 무기는 작은 현상도 놓치지 않는 집요한 관찰력, 현상을 모아 이론을 만드는 논리력이었다. 두 가치는 근거 없는 주장이 돌고 가짜 뉴스가 판치는 현대에도 여전히 소중하다.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종의 기원』초판 번역본. 한길사 판본은 한국어 문장다운 의역이 많고 사이언스 북스 판본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려 노력했다. 둘 다 좋은 책이다.


『종의 기원』은 서론과 14개 장으로 구성된다. 책의 요지는 서론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지구 상의 생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생물들은 부족한 자원을 두고 생존 투쟁을 일으키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형질을 갖춘 개체가 자연 선택된다3). 이어지는 1장부터 14장은 결론을 설득하는 크고 작은 논증이다.


『종의 기원』을 관통하는 논증은 1장과 4장 사이에 있다. 1장 '사육과 재배 하에서 발생하는 변이' 는 사람이 길들였지만 야생만큼 다양한 동·식물을 다룬다. 원시 인류는 생물을 기르다가 더 나은 변종이 우연히 나타나면 그것을 선택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문명 내에도 다양한 생물이 생겨났다. 다윈이 길들인 생물에 대한 내용을 앞에 배치한 이유는 당대 독자에게 육종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현대 독자에게는 반려 동물이 있다. 다윈의 말을 좇으며 말티즈와 시베리안 허스키가 한 종에서 나왔을지 천천히 따라가보라.


1장은 다음 장을 위해 깔아둔 포석이다. 4장 ‘자연 선택’에서 다윈은 인위적인 선택만으로 생물이 다양해질 수 있다면, 더 큰 규모의 자연에서도 생존에 유용한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외향만을 보고 개체를 선택한다. 반면 자연은 생존에 불리한 생명을 가차없이 내친다. 유사 이래 인간은 생물들을 길들였지만 그 역사는 자연의 지질학적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모든 근거를 주고서 다윈은 독자에게 묻는다. 생물을 다양하게 만드는데 자연이 인간보다 더 훌륭하지 않겠느냐고.


현대 독자에게는 다윈의 논증이 낯설다. 요새 과학은 독자에게 주장을 논증하는 대신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과학적 방법론이란 가설을 세워 실험으로 입증하는 과정이다. 강력하지만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수많은 배경 지식 위에서 이루어진다. 지식은 때로 권위가 되어 독자를 속박한다. 독자는 'DNA가 유전정보를 전달한다'는 말을 확신하지 못해도 반박하지 못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보였고, 수없이 응용된 기술로 입증된 과학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을 읽는 데는 어떤 배경지식도 필요 없다. 다윈이 제시하는 주장이 맞는지 따질 판단력만 있으면 된다. 다윈은 주장 하나에 수많은 생물들을 예로 들기도 하고, 때로 당대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대담한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다윈의 말이 맞는지는 독자 각자가 자신이 아는 자연을 근거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첨단을 달리는 현대 생물학도, 『종의 기원』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던 독자들에게서 태어났다.  



다윈의 훌륭한 글빨은 사라졌지만 대신 멋진 그림이 가득한 책. 진화론 자체를 알고싶다면 이 책으로도 충분하다.




글을 쓰기 위해 장대익의 APCTP 19기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 강의 내용을 참고함.

책 표지 출처 알라딘(https://www.aladin.co.kr/)

커버 출처 (https://www.sabinaradeva.com/)

*(https://scholar.google.co.kr/scholar?hl=ko&as_sdt=0%2C5&as_ylo=1860&as_yhi=2020&q=the+origin+of+species&btnG=&oq=the+ori)  2020.01.21 확인.

** '수십만 회'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숫자이다. 1900년-2020년 사이에 'bio'를 담은 연구는 150만 개 이상 존재한다. (https://scholar.google.co.kr/scholar?q=bio&hl=ko&as_sdt=0%2C5&as_ylo=1900&as_yhi=2020) 2020.01.21 확인.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