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2 - 시집가고 장가가고』 서평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보통은 ‘과거 사람들이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배우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관점은 과거 인간이 현재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우리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 동시대에 사는 사람도 세대가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몇 백 년 전 살았던 사람의 사고방식은 현대인으로서는 이입하기도 어렵다. 과거 사람을 본받거나 공통점을 찾기 전에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달랐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거시사보다는 생활사가 알맞다. 범위가 작고 자세해질수록 역사는 인류학자가 쓴 지구 반대쪽 민족의 기록처럼 낯설게 읽힌다. 남태평양 원주민의 기록 대신 우리의 생활사를 읽는 까닭은 우리와 다르면서도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상에게 태어났다. 그들의 피와 문화는 우리 몸에 여전히 남아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사를 읽다 보면 사람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생활사를 읽다 보면 타인의 행동을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는 일도 줄어들고, 시대와 맥락 속에서 행동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를 2권부터 읽기 시작한 이유도 조상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의식주’는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가족과 결혼처럼 삶에 밀접한 문화일수록 쉽게 달라졌으리라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책을 읽다 발견하는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예상은 다른 방향으로 빗나갔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이 변했다. 책은 조상의 조혼 풍습을 다루며 저술 당시로서는 최신 영화였던 ‘어린 신부(2004)’를 참고한다. 책에 나온 ‘어린 신부’ 영화 포스터에는 ‘밥 못해도 좋다. 섹시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배우 김래원과 문근영이 한 이불 안에 있는 모습이 배경이다. 2020년에 이런 문구로 영화를 만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는커녕 상영관을 찾기도 전에 숱한 비난을 받고 내려갈 것이다.
20년도 안 된 영화마저 이렇게 낯설다. 이 책에는 조선 시대의 일화가 제일 많이 나오는데, 나름대로 최근의 역사인데도 구석기인을 보는 양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사람들이 살던 모습은 TV 속 사극과는 전혀 다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TV 속 조선 시대는 요즘 사람들이 이입 가능하도록 변형한 ‘가상현실 속 역사’인 셈이다.
옛사람들은 개인보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였다. 시스템은 ‘인륜’이나 ‘예’로 불렸다. 예를 들어, 조상들의 혼인은 당사자의 결합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무턱대고 시스템에 맞출 수는 없다. 옛사람들이라고 욕망이 없을 리 없다. 남성은 억지로 맺어진 처 대신 첩을 찾았고, 여성조차 ‘방탕하고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 시절 동성애나 남녀추니가 없었을 리 없다. 이따금 기록에 등장하는 성소수자는 끝이 항상 좋지 못해 아쉬웠다.
한반도인의 생활양식은 시스템과 개인의 사정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어떤 문화는 중국의 ‘예’와 맞지 않았다. 조정의 신하들은 음양오행에 맞지 않는다거나 중국이 비웃는다며 억지로 풍습을 바꾸자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풍습을 고치는 경우는 현실적인 사정이 있을 때였다. 금주령을 내리고 온돌을 제한한 이유는 필요 이상으로 곡식과 나무를 소모해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어떤 규제를 내린 들 백성들은 해마다 몇 만 명 단위로 굶어 죽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사람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하루 세끼 고기반찬도 오늘날에서야 생긴 특권이다. 배부른 현대인의 눈으로 이들을 야만적이었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주제에 맞게 기록을 정리하면서도 재미까지 곁들인 저자에게 고맙다. 수 천년을 담은 과거의 기록을 찾아가며 개인의 생활을 찾아내는 일이 쉬웠을 리 없다. 한국사에 대한 책은 많지만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의 책을 찾기는 어렵다. 역사서 저자가 역사를 제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런 중에 사료에 오역이 있을까 두렵다는 저자의 조심스러움이 반가웠다.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는 7권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