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비대면 학기 수강 소감
코로나 사태와 겹쳐 대학원 막 학기를 비대면으로 보냈다. 본래 석사 과정 4학기 차는 졸업을 준비하느라 한창 바빠야 하지만, 운과 불운이 겹쳐 졸업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2020년 1학기는 반드시 들을 건 없지만 아무것도 안 듣기도 아까운 보너스 학기였다.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듣고 싶었던 학부 전공 강의 둘에 교양 강의 하나, 언론학과의 기사 쓰기 강의를 신청했다. 연구실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딱 학부생 4학년 같은' 시간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기는 즐거웠다. 성적도 성실한 학부생 4학년만큼은 나왔다. 비대면 상황에 시험이 오픈북이나 과제로 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도 비대면 학기는 내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학교가 커서 강의를 듣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도 꽤 걸렸는데 원격으로 들으며 이동 시간을 아꼈다.
내가 들은 강의의 교수들은 수업을 태만하게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초유의 비대면 학기를 맞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모험심을 갖고(?) 수업을 진행했다. 기사 쓰기 강의는 수업을 안 하는 대신 개인 첨삭에 공을 들였다. 교양 강의도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토론 게시판을 열어 학생들의 의견을 받았다. 학부 전공 강의는 학생들에게 떠먹일 정보가 워낙 많아 실험적인 강의는 하지 못했을지언정 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쳤다. 대학원 막 학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부를 졸업하고 그리워했던 '지식의 길잡이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비대면 학기가 만족스러웠던 데는 내가 우선순위에서 바깥쪽으로 밀려난 대학원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학생은 쉬고 사회인은 재택근무를 할 때, 대학원생은 매일 출근하고,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수업이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상관이 없었다. 대학원생이 바이러스에 아랑곳 않고 출근하는 이유야 자기 연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누구든 자기 일은 소중하다. 보통 사람들이 일과 안전을 비교하고 안전을 고를 때, 대학원생은 그것이 저울질할 대상인지도 모른 채 일상을 보냈을 뿐이다.
수업의 질에 대해서도, 지난 대학원 세 학기보다 이번 비대면 학기가 훨씬 나았다. 지금까지 들은 대학원 강의란 전문성을 핑계로 교수마다 단원을 나누고 아무도 전체를 책임지지 않던 '팀 티칭'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강의는 교수가 전공생 수업과 타 전공 대학원생 수업을 따로 받고서는 같은 시간에 묶어 가르치기도 했다.
교수는 그대로인데 대학원 강의보다 학부생 강의가 나을 이유가 있을까? 학부 수업이 나은 이유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을 상대로, 매해 똑같이 가르치던 내용을 되풀이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소수의 대학원생과, 불특정 다수의 학부생을 대하는 교수들의 태도가 다르다고 느낀다. 어떤 교수는 강의 첫 시간에 '대학원생은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고, 혼자 논문을 보며 공부하면 충분하다'라고 입을 뗐다. 약간 다른 전공을 선택한 대학원생을 상대로 '이렇게 깊이 알 필요는 없다'며 시간 내내 잡담만 하고 가는 교수도 있었다. 의견은 각자 가질 수 있지만,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 상대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수업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교수가 자기 학생의 논문 지도는 제대로 해줄까 의심스럽다.
수업이란 지식을 먼저 익힌 이가 다음 세대에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지식을 깊게 익혀야 할 대학원생을 상대로 한 수업은 코로나 시대의 학부생 수업만도 못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기 위해 평생을 바칠' 적성이 아니었기에 대학원이 맞지 않았다고 자조한다. 머지않아 대학원을 떠나는 내게, 이 모든 일은 불쾌한 경험으로 끝날뿐이다. 하지만 열정 가득한 초년차 연구자들이 나와 비슷항 경험을 하다가 몇몇은 나와 같은 결말로 끝나리라 생각하면 안타깝다. 적어도 열정을 갖고 온 이를 받아주는 곳에서 열정을 꺼트려서는 안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