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감상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유적지나 박물관 가는 것도 좋다. 역사를 접할 때 나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를 전제로 한다. 과거 사람들도 나만큼은 똑똑했고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휘둘리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란 이미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에, 당대 사람들은 몰랐던 맥락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지금 내가 볼 수 없는 맥락을 상상하게 해 준다. 예컨대 임오군란의 맥락과 결과를 떠올리면, 카카오택시를 반대하던 택시 기사들을 마냥 이기주의자라고 욕할 수 없다. 세계사는 근대로 올수록 비극이 가득하다. 근대 전쟁사가 '너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겠냐'며 물을 때 당당히 아니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청일전쟁 시대부터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일본을 다룬다. 저자는 자신이 그 시대에 살았어도 전쟁을 하자는 말에 설득당하지 않았을지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실제로도 읽다보면 설득까진 아니어도 이해가 된다. 당대의 상황, 지식인과 정치인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태평양 전쟁이다. 전쟁 논리에 휩쓸리다 정신을 차리겠다고 앞 페이지를 넘겨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한국사에서 '일본이 왜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악랄하게 대했을까?'의 대답은 허리에 칼을 차고 조선인을 학대하던, 늑대 머리를 한 순사 이미지만큼이나 단순하다. 우리에게 일본은 욕심 많고 잔인한 한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 시절 일본이라고 개인이 없었을 리 없다. 전쟁이 나면 고국을 떠나 제 목숨을 걸어야 했던 농민들과,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거대한 대관람차를 보고 온 지식인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 전체가 극동의 괴물이 되었던 이유는 일본인이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더 악랄했다거나 국가 지도자를 신으로 섬기는 기괴한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었다. 일본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청과 러시아를 이기고서 주변을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고서는 '앞으로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중일 전쟁을 벌였다. 종국에는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에 쳐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며 처음부터 이길 가능성도 희박했던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다.
일본이 다수를 희생하는 전쟁을 택한 이유는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개화기의 일본인들은 건전했다. 민주주의 개념도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서구가 일방적으로 맺었던 불평등한 조약을 바꾸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 국가는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선거권을 주었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군부를 믿고 자신을 전장에 몰아넣는 선택을 내렸다. 당시 일본인과 현대를 사는 독자를 비교할 때, 일본인들이 채 지니지 못한 개념이라야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 정도였다. 일본인은 자신들이 치른 희생으로 행복한 삶을 얻는 대신 나라가 강해지길 원했다. 그 길에 끝은 없었다.
현대에 개인의 생명은 당연하기를 넘어 신성시된다. 국가를 위해 타국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자국민을 희생하는 일은 영영 없을 것 같지만, 그럴리가 있나. 21세기 한국에서도 국가가 위기라며,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옆 나라의 역사에서 현대 한국 독자가 배울 교훈이라면, '위기 상황'이라는 선동에 자유나 생명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