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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Mar 08. 2021

자전거.등교에서 출근으로

10년 자전거 기록

어릴 때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엔 복도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짧은 복도를 네발 자전거를 전속력으로 몰다가 벽에 쾅 부딪히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로 언덕길을 내려오다 구른 적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왜 나에게 말을 걸며 걱정을 하는지 몰랐는데, 집에 오는 길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니 영화 속 배우처럼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마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처음으로 성형외과에 갔다.


고3과 재수 시절에는 자전거를 탈 여유가 없었다. 대신 자전거로 등교하는 대학생 나를 상상했다. 아쉽게도 상상은 대학을 가고도 7년이 지나서야 현실로 이루어졌다. 학교가 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교보다 등산이 어울리는 캠퍼스를 다니며 자전거 등교를 포기했다. 그때는 몰랐다. 모교는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손에 꼽는 서울 3대 업힐 코스 중 하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 근처로 이사하고 나서야 자전거로 통근할 만한 평지에 살게 되었다. 자전거를 살 생각은 못하고 외국에 나간 사촌 언니의 자전거를 가져와서 다녔다. 걸어서 20분 걸리는 통근길이 자전거를 타니 5분으로 줄었다. 매일 자전거로 통근했다. 깜빡 잊고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았을 때에도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가져왔다. 회사 아닌 곳도 자전거로 다니기 시작했다. 40분이면 역까지 갈 수 있었고, 20분 만에 자전거 타기 좋은 공원까지 가서 돌다 돌아왔다. 회사를 1년쯤 다니니 좋은 자전거에 욕심이 났다.


2017년에 MTB 자전거를 구입했다. 돈 벌고 처음으로 나에게 사준 비싼 물건이었다.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발품을 팔았다. 좋은 자전거는 많았지만 볼수록 눈만 높아졌다. 예산을 정한 후에도 10-20만 원을 더하면 살 수 있는 한 등급 높은 자전거에 눈이 갔다. 그러면서도 고작 자전거 따위에 그만한 돈을 주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정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자전거포 주인이 바깥에 있는 자전거 하나를 보여주었다. 3개월도 안 타고 중고로 돌아왔다는 물건이었다. 2017년 자전거가 2017년에 중고로 풀린 사연은 이랬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시간은 없고 돈은 많이 버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그중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아저씨가 둘 있었으니, 둘은 취미를 아내와 공유하기로 결심하고 아내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단다. 첫 부부 동반 자전거 모임에서 보니 한 아내의 자전거는 백삼십만 원 짜린데 다른 편 아내의 자전거는 삼백만 원이 넘는 물건이었다. 더 싼 자전거를 산 아저씨는 자존심이 상해 자전거포에 돌아가 아내의 자전거를 되팔고 오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 갔다나. 거짓말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싶어 주인 잘못 만난 자전거를 좋은 값에 사 왔다. 그렇게 산 자전거는 지금까지 타 온 자전거와 다르긴 했다. 옛 자전거로는 꿈도 꾸지 못할 언덕도 기어를 조정해 올라갔고, 한두 계단 정도는 자전거에 탄 채로 내려올 수 있었다.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좋은 자전거이다


퇴사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연구보다는 매일 자전거로 출근할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모교는 자전거가 좋다고 쉽게 오를 곳이 아니었다. 학교 가는 길부터 고개를 넘어야 하고 정문을 지나면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 한참 자전거를 타다가 단과대 건물쯤 다다르면 고개는 저절로 숙여지고 바닥의 벽돌 수를 세며 올라야 했다. 취미로 학교를 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뜨악할 만큼 힘들었다. 그러다 크로스핏에서 왼쪽 손목을 다친 후로는 자전거와 멀어졌다. 밤늦게 실험을 하다가 집에 가는 길이면 자전거로 학교에 오르는 사람들이 한 둘 보였다. 그들의 시간과 체력을 부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연구실을 졸업하고 새 직장에 들어오니 다시 자전거 생각이 났다. 직장이 한강 근처에 있던 덕이었다. 집에서 한강에 이르기까지 높은 언덕과 터널을 지나야 해서 완전한 자전거 출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다가 한강 앞에서 내려 따릉이를 빌려 회사에 왔다. 아침 한강은 퍽 예쁘다. 강물에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버스를 탈 때는 통로를 채운 사람들과 대교를 메운 차들 때문에 밖을 볼 여유가 없다. 아침 한강 빛깔은 바깥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다가 고개를 돌릴 때 제일 잘 보인다.


사촌 언니의 오래된 자전거를 타다 내 자전거를 샀던 4년 전처럼, 몇 달 따릉이로 출근을 하니 따릉이 대신 내 자전거로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다만 이번 출근길은 전보다 길고 험하다. 발상을 전환해 길더라도 자전거를 타기 좋은 경로로 돌아가기로 했다. 첫 시도는 버스 통근보다 10분 정도 더 걸렸다. 오르막은 있었지만 못 갈 길은 아니었다. 질색하던 학교 언덕길이 도움은 된 것 같았다. 경사보다 무서운 건 같은 시간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인도는 보행자로 넘치고 차도엔 차들이 빵빵댔다. 자칫하면 교통 사고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자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침 저녁 자전거를 타고 난 기분이 참 좋았다. 올해는 가능한 자전거 출근을 늘리고 싶다. 이제 남은 일은 사람과 차가 최대한 적게 다니는 골목과, 회사 어딘가에 있다는 샤워실을 찾는 것이다.




커버 사진: 퇴근길은 빙 돌지 않고 터널과 언덕을 지나 왔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언덕은 가팔랐고 앞뒤 차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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