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샷>서평
<룬샷>은 기업 내부에서 어떻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유도하고, 아이디어를 안정적인 수익으로 유지하는지를 ‘상전이’라는 물리학 개념을 빌려와서 설명한 책입니다.
저자는 기업이나 연구 기관의 사례를 모아 집단의 상전이 모델을 설계했습니다. 본래 상전이란 물질의 상태가 바뀌는 현상입니다. 물질은 액체, 기체,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데, 분자가 받는 에너지에 따라 고체에서 액체가 되는 등 상태가 변합니다. 물질의 상태는 물질의 종류와는 무관합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가 그대로여도, 얼마나 에너지를 받느냐에 따라 고체와 액체는 성질이 전혀 다르거든요.
저자가 보기에 기업의 상태와 물질의 상태는 비슷합니다. 기업이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졌든 환경에 따라 경직된 고체가 되기도, 아이디어가 넘치는 액체가 되기도 합니다. 기업의 상태는 인센티브 등의 환경 변수가 결정하지, 사람의 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성공했을 때 받는 성과급보다 사내 정치로 승진했을 때 오를 연봉이 높다면 누구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보다 상사와의 술자리에 더 시간을 들일 것입니다.
모델의 장점은 결괏값 y를 만드는 변인 x를 찾고 조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액체가 기체로 되는 데 필요한 변수로 온도와 압력을 알아냈다면, 온도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는 대신 압력을 제어해 기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집단의 수나 인센티브 방식 등의 변수들을 찾아내어 조직이 경직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하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요새 나오는 자기 계발서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은 다를지언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비슷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미리 정해놓은 후 메시지에 맞는 일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의 삶을 멋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잘 알려진 사례가 없다면 비서를 시키든 출판사를 들볶든 이름 없는 사람의 소소한 성공을 찾아내 긁어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에 감탄하기는 잠시요, 나중에는 엇비슷한 이야기에 자기 계발서 자체에 질리게 됩니다.
<룬샷>도 ‘요새 자기 계발서’ 중 하나입니다. ‘상전이 공식’이라는 메시지를 납득시키기 위해 유명한 기업가의 일화나 역사 상의 사건을 가져오는 식입니다. 무리한 유추도 많고, 해석하기 따라서는 저자의 메시지와 상반되는 예시도 있습니다. 성공한 아이디어는 룬샷이라 추켜세우고 ‘어떤 룬샷이든 세 번의 역경은 겪는다. 가짜 실패를 간파하고 극복하라’고 말하지만, 실패한 아이디어는 책에 나오지조차 않죠. 저자가 강조하는 전략형/제품형 룬샷은 서비스가 제품이 되는 요즘 세상에 구별하기조차 모호합니다. 의사 결정을 혼자 내리는 리더는 ‘모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며 폴라로이드의 CEO였던 에드윈 랜드의 예를 들지만, 폴라로이드가 오늘날까지 성공했다면 랜드의 사례는 ‘가짜 실패를 극복하고 룬샷을 잘 배양한 지도자’로 쓰였을 거예요.
특히 3장,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룬샷들’은 공식을 소개한 2장에서 끝나도 되었을 책의 사족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일어나는데, 그런 섬세한 분석 없이 자신이 만든 모델에 역사를 끼워 넣고서 ‘중국은 기술 발전이 빨랐으나 경직되어 아이디어를 살리지 못했고, 서구권 국가는 아이디어를 잘 배양해서 성공했다’는 오만한 결론을 내립니다. 차라리 책이 좀 얇아지더라도 모델에 집중하고 사례를 쳐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룬샷>의 가치는 일화의 교훈도, 경영서로서의 메시지도 아닌 저자의 추상화에 있습니다. 세상의 개별 사례를 보고서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안목 말입니다. 물리학이라고 하면 흔히 분자보다 작아서 감도 잡히지 않는 쿼크부터, 태양계 바깥, 언급하기도 버거운 블랙홀 따위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의 범위는 넓어 산불과 교통 체증은 물론 성공하는 기업까지 같은 모델로 설명하는 시각 또한 물리학의 한 갈래이며, 이것이야말로 쿼크나 블랙홀보다 훨씬 삶에 필요한 소양일 것입니다(비슷한 책으로 김범준 교수의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 있습니다.).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 하나의 이론을 세우고서 틀에 맞게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을 예측하거나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룬샷>은 기업가에게 필요한 충고를 하는 경영서인 동시에, 개별 사례를 추상화하고 모델을 만든 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과학적 사고를 현실에 적용한 과학 사례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