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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Jul 19. 2021

<클라이머, 암벽, 박수>

<사람, 장소, 환대>와 스포츠 클라이밍

스포츠 클라이밍에 입문했다. 설 즈음 고향 친구의 소개로 일일 체험을 했다. 반년 만에 본격적으로 주말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클라이밍은 특이한 운동이다. 혼자 하는 운동인데 사람들과 교류가 된다. 심지어 여느 운동보다 빨리 친해진다. (스포츠 클라이밍 중 내가 제대로 해본 건 ‘볼더링’뿐이다. 앞으로 하는 이야기에서 ‘클라이밍’은 곧 ‘볼더링’을 의미한다.)


클라이밍을 해보지 않은 사람 눈에 사람들끼리 유난히 돈독한 모습은 퍽 낯설다. 클라이밍을 해본 적 없는 친구와 클라이밍 일일 체험을 할 때, ‘막걸리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감상을 들었다.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서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막걸리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른 사람의 클라이밍을 구경하고, 완등(목표한 지점에 다다르는 것)해 내려오면 다 같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클라이밍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하산하는 등산객 무리와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그러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으며 클라이밍이 왜 유난히 무리를 이루는 운동인지 이유를 깨달았다. 이 책은 제목이 곧 내용이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가지 개념을 다룬다. 개인은 타인에게 환대받을 때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환대’란 개인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세 개념은 선풍기 날개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표지 출처 알라딘: 사람, 장소, 환대 (aladin.co.kr)


볼더링은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운동이다. 첫 번째 돌에서 마지막 돌을 잡는 전 과정(‘문제를 푼다’고 표현한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한 사람이 벽을 잡으면 다른 사람은 그 벽에 올라갈 수 없다. 안전 때문이다. 언제 손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질지 모르니 행여나 근처에 서성대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벽에 누군가가 이미 붙어 있다면, 그 사람이 벽을 다 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벽을 타는 것은 장소를 점유하는 행위이다. 암장에 처음 온 사람은 이용료를 냈는데도 한 벽에 계속 있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자신의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클라이밍은 오래 할 수 없는 운동이다. 팔에 힘이 빠지든 손바닥이 아파서든 하다 보면 반드시 쉬어야 한다. 매트 앞에 놓인 의자도 ‘장소’라, 점유하는 것은 똑같다. 의자에 앉아 혼자서 핸드폰만 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만약 내가 클라이밍이 궁금해서 ‘혼자’ 일일 체험을 왔다면 한두 번 벽을 타다 마음이 불편해 돌아갔을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의 용어를 빌리면, 환대받지 못한 개인은 장소에 있을 수 없다.


떳떳하게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환대를 받아야 한다. 클라이밍에서 환대란, 누군가가 완등하는 모습을 끝까지 구경하고 박수를 쳐주거나, 삼각대를 빌려 영상 촬영을 해주는 일이다. 처음 박수를 받으면 어렵지도 않은 문제에 축하를 받는 데 민망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클라이밍에서 박수는 그를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환대이다. 박수도 몇 번 받다 보면 익숙해지고, 곧이어 다른 사람의 문제풀이를 구경하고 함께 축하하게 된다. 문제풀이에 박수를 치는 일은 행동 그대로의 환대이지만, 동시에 벽이 아닌 장소를 허락받고 자신의 몸을 쉬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클라이밍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 클라이밍 무리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암장에 갔을 때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는 것, 사람들과 카톡방을 열어 다른 동네의 암장에 ‘원정’을 가는 것, 나아가 실외 암장이나 자연 암벽을 타러 가는 것이다. 함께 강습받는 사람들이나, 같은 시간에 자유 이용을 하는 사람들끼리 무리가 짜이는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친구를 클라이밍에 입문시킨다. 말했듯이, 클라이밍은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은 환대의 의식이 약하거나, 있더라도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코치가 있는 운동은 환대가 약하다. 무리의 성원이 해야 할 환대를 코치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코치가 충분히 친절하다면, 운동 세션은 불편하지 않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굳이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구기 종목의 환대 의식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협동은 무엇보다 강한 환대인 덕분이다. 그렇지만 인류학 책에 운동선수 무리들이 예시로 많이 나온다고 하니, 관찰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무리 안에서 환대 의식이 있을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의 통찰은 어느 무리에 적용해도 잘 들어맞는다. 이 글에서는 클라이밍에 개념을 적용했지만, 실제 책에서 드는 예시는 우리 사회 전체이다. 경제적 요건과 환대가 엮이면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클라이밍 무리에 끼어들지 못한 사람은 클라이밍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장소를 잃은 개인은 갈 곳이 없다.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아는 일은 자체로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념과 이해관계를 초월한 ‘인간 무리의 행동’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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