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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Dec 04. 2020

나는 걷는 사람입니다.

내 보폭으로 걸어야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걷기를 시작한다.
집 앞에 조깅하기 좋은 호숫가가 있다.
음악을 들으며 빠르게 걷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밤새 몸속에 가둬둔 묵직한 생각과 고민들이

싸~악 털려 나가는 것 같다.

속 상큼한 에너지들이 뿜어져 나와

보이는 모든 게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음악을 들으며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걸어간다.


오래전,

나는 길을 탐색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다리를 뻗어 한 발을 내딛는

그 첫걸음의 무게가 오늘의 걸음수를 결정한다.
익숙한 동네에서 살짝 벗어나

이웃동네까지 걷는 날은

어김없이 새로운 길을 만난다.


특히나 한국의 골목길은 미로처럼 꼬여져 있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선다.  

길이 없을 것 같은 곳에 또다시 뻗어 이어진

길에 들어서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한발 한발 내 보폭으로 나아가는 걸음엔

이유도 질문도 없다.

그냥 좋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이 주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공존한다.

새로운 도시에 처음 도착해 숙소에 배낭을 던져놓고

처음 마주하는 것도 거리의 길이다.

도시마다 지형도 다르고 길도 표정이 제각각이라

뚜벅뚜벅 걸으며 그곳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내 인생 첫 배낭여행이었던 인도에서

나는 비포장도로의 길들을 참 많이 만났었다.

빨간 흙밭의 먼지 길을 걷다 보니

항상 얼굴이 꼬질꼬질했다.

길 위에서 바라본 인도의 이국적인 풍경은

유럽의 고풍적인 건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곳엔 사람들이 있었다.

길을 걸으며 만난 엽서 파는 꼬마, 구두 닦는 아이,

흥정하는 락사꾼들...

그 길을 걸어가는 내가 그들의 일상에

툭 던져진 기분이랄까

나는 곧 그곳에 스며들었다.

하루 만보를 걷겠다는 목표를 세운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호숫가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오면

6.87킬로다. 대략 8700 보정도 된다.

나는 이미 다리가 풀리고 숨이 턱까지 찼는데..

목표로 정한 만보를 달성하기 위해

집을 찍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갔다.


동네를 빙빙 돌면서 만보계를 뚫어져라 보다가

"9998. 9999. 10000 " 땡

만보를 보고 집으로 미친 듯 달려왔다.

한참을 소파에 벌러덩 뻗어있었다

숨을 고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자

내일이 걱정이다.

아, 비라도 안 오나...

다른 사람의 성공 기준이

나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내 보폭이 아닌 걸음수를 채우면서 깨달았다.

무리하지 않고 내 숨으로 내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

그 걸음이 온전한 내 것이다.

보통의 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채워 나가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속삭여본다.

내일도 똑같은 루틴.

나는 걷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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