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하지, 많이 필요하지
우리 집엔 육식동물 두 마리가 있다. 매 끼니 고기! 고기! 고기 없으면 반찬이 없다고 한다. 그중 한놈은 생선도 싫고 무조건 고기만이다! 나는 딱히 고기를 엄청 좋아하진 않으나 그들 덕에 하루에 한 끼는 꼭 고기를 먹어왔다. 그런데 작년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경계 수치가 나왔다. 물론 이게 꼭 고기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지만, 균형 잡힌 식단을 위해 그날부터 당장 야채를 한 박스 주문했다. 내가 이 정도면 고기에만 환장하는 우리 집 육식동물들은 더 위험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육식동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고기로 배 채우기도 부족하다는 둥, 야채 배를 따로 만들어야 하니 조금씩만 달라는 둥, 이렇게 풀만 먹고살다가는 입에서 풀냄새가 나겠다는 둥. 시끌시끌하다. 평소에 잘 들어주는 편이긴 한데, 건강에 있어서는 나도 타협이 없다. 싹 다 무시하고 밥 먹기 전, 샐러드 한 접시씩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정했다. 어차피 위장 사이즈가 나랑 다른 사람들이다. 궁시렁궁시렁 하면서도 끝까지 샐러드를 다 먹고 밥도 다 먹는 우리 집 육식동물들. 샐러드 소스도 같은 걸로 계속 먹으면 지겹다고 할까 봐 이것저것 바꿔 만들어봤다. 이런 나의 정성을 너희들은 알까.
그들을 기어코 적응시켜 놨더니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도 육식동물이었던 건지 내가 샐러드에 제일 먼저 질려버렸다. 결연하게 열심히도 해 먹다가 최근에 뜸했던 건 그것 때문. 요즘 운동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된 남편에게 아주아주 조금씩 복근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살에 덮여있어서 티가 하나도 안 나지만 저 속 어딘가에서 용암처럼 솟아오르고 있단다. 단백질과 샐러드를 잘 챙겨 먹겠다고 하며 은근히 샐러드를 요구한다. 아들은 얼마 전부터 약간의 변비를 호소하고 있다. 뭔가 일을 봐도 시원하지 않다고 한다. 역시, 우리 집에 꼭 필요한 건 샐러드였구나.
우리 집엔 또다시 초식 바람이 불 예정이다. 내일부터는 매 끼니 전채요리가 먼저 나온다,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