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돈은 아니구요
“이상형이 뭐예요?”
“존경할 수 있는 남자요”
스무 살 무렵, 잡지에서 가수 a 씨의 인터뷰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 시절,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갓 대학신입생이 된 나는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에 부풀어 있었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말이 필요했다. 욕망덩어리 어린 여대생이 포장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그 말을 곱씹을수록, 외모나 키, 성격뿐만 아니라, 지식수준, 미래가치등을 다 아우르는 의미라는 걸 알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을 만나겠다’의 다른 말이었다. 이십 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현실은 한 가지만이라도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날 것을 이야기했다. 결국, 많은 조건을 내려놓고 선택한 것은, ‘만났을 때 편안하고 미래가 있는 남자’였다. 그게 바로 이십 대 내내 경험으로 얻은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의 의미가 되었다.
우리는 20대의 끝자락에 소개팅으로 만났다. 우리를 소개해주었던 친구는 남편과는 친한 친구였고 나와는 회사 동료정도의 사이였다. 그 친구는 남편을 소개해 주기 전에 3-4번 정도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는데, 남자들의 조건을 줄줄 읊어주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걸까? 양쪽 모두에게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고, ‘좋은 사람이니 너희들끼리 서로 잘 알아가 봐’라고 했다. 만나기로 한 당일, 그는 약속 시간에 30분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30분을 늦은 채 종종거리며 뛰어갔다. 카페에서 기다리던 그는, 내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올 시간에 맞춰 함박웃음을 지으며 배웅을 나왔다. 그 미소에 속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소개팅의 기본 코스대로 그가 예약해 놓은 파스타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책 이야기, 여행 이야기, 소개팅 주선자 이야기. 대화가 통하는 듯 안 통하는 듯, 관점이 비슷한 듯 다른 듯, 성격이 다정한 듯 냉정한 듯 그를 판단하기가 헷갈렸다. 지금까지도 우린 대화를 할 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다른 이야기인 때가 많다. 내가 a를 말하면 남편은 a’를 말하는 정도로. 아주 가까이 있는 평행선처럼. 그 당시 우리가 잘 통한다고 느꼈던 건 분명 내 느낌의 오류였는데,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는 다음 코스로 카페를 가려고 정해놨지만, 아까 기다릴 때 카페는 가지 않았냐며 내가 재즈빠에 가자고 제안했다. 우린 칵테일을 마시며 재즈를 얼큰하게 들으며 서로의 연애스타일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칵테일을 한잔 더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아, 나에게 여긴 계산하라는 뜻이구나. 카드를 내미는 나를 보며 그의 눈에 하트가 번졌다.
연애를 시작하며 우리의 다름을 알아갔다. 데이트하기 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계획을 짜오는 그와 달리, 나는 만나기 전까지 아무 말이 없다가 ‘날씨가 좋으니 춘천에 놀러 가자’라고 말하는 타입이었다. 몇 번의 만남 후, 그는 자기가 짜온 계획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오늘은 뭐 하고 싶은 느낌이야?’라고 물어보는 걸로 계획을 대신했다.
사귀고 처음 맞는 그의 생일, 나는 현모양처로 변신하여 미역국에 갈비찜에 잡채를 해다가 푸짐하게 한상을 차려냈다.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에 감동하여 그는 눈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라고 했다. 선물로는 그가 좋아할 만한 지갑을 사줬고, 그는 실용적이고 딱 필요했던 거라고 하면서 닳을 때까지 잘 가지고 다녔다. 그러고 나서 내 생일, 갖고 싶은 게 수만 가지인 터라 미리 얘기하고 선물 받는 걸 선호하지만 사귄 후 첫 생일이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내가 얼마 전부터 목을 만지작거렸던 걸 기억할까? 그리고 생일날 우리 집에 들어서는 그 사람을 보고 너무나도 그다워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포장도 하지 않은 커다란 상자를 들고, 개선장군이나 되는 양 의기양양 들어온 그 남자. 거기엔 컴퓨터 본체가 들어있었다. 내년엔 모니터가 선물이야? 응 맞아.
사귀는 시간이 길어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처음 보는 타입의 이 남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남자의 가계부였다. 데이트를 마친 밤, 그 옛날 시골의 엄마들이나 꺼내어 쓸 법한 가계부를 펼쳐 차곡차곡 하루의 지출을 기록한다고 했다. 그는 ‘버는 남자’였다. ‘많이 버는 남자’가 아니라, ‘지출을 관리하는 남자’. ‘쓰는 여자’인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모아놓은 돈도, 마땅한 경력도 없었다. ‘쓰는 여자’의 동의어는 ‘지출에 무심한 여자’였다. 쓰는 여자인 나는 돈이니 경제니 하는 현실을 피해 주문처럼 꿈타령을 하며 공상 속에 살았다. 그런 내게 나타나 가계부를 열어 보여주던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는 신기하지만 예측가능한 사람이었고 그런 점이 나에게 재미와 안정감을 동시에 주었다. 그는 내가 예측 불가능하기에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의 카테고리에 묘하게 벗어나있는 사람이었다. 편안하긴 했지만, 이 남자가 과연 존경할만한 남자인가? 글쎄, 뭐라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를 사람이었다. 당시엔 내가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와 너무나도 다른 그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이 되었다. 뭐 하나 안심이 되는 구석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도 다른 면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격, 가치관, 음식이나 영화취향, 라이프 스타일, 세상에 대한 관점,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까지 정말 모든 게 다 달랐는데, 그런 부분이 서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일을 하며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그의 꼼꼼함과 일에 대한 완벽주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처음 만나던 때의 데이트코스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그는 ‘버는 남자’ 일뿐만 아니라, ‘잠재력이 있는 남자’였다. 한 곳에만 집중하는 힘을 가진 그가 부러울 정도였다. 2년의 연애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것은 우리의 미래였다. 오랫동안 꿈타령만 하다가 결국 꿈과도 멀어져 방황하던 나는, 그의 꿈이 나의 꿈인 것처럼 그의 사업 준비에 함께 몰두하며 울고 웃고 설렜다. 현실도 이렇게나 설렐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 방향을 보며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