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지

그가 각성하게 된 계기

by 초코파이

그날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이상한 날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사용하던 세상 멀쩡하던 코렐 접시가 와장창 깨졌다. 코렐은 안 깨지는 접시의 대명사 아니었던가. 그중 한 조각이 내 다리에 날아와 작은 상처를 남겼다. 집에 있던 구급함은 그날따라 보이지도 않아, 날카로운 접시 조각을 뒤로하고 연고를 사러 갔다. 붕 떠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에, 어디선가 올 것만 같은 '그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종종거리며 약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현관을 막 나서는데,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지이잉하는 진동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었다. 진동이 한 번 다 울리기도 전에 통화버튼을 눌러댔다.

“여보, 큰일 났어.”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우리의 사업장은 시골 마을의 중심 상권이었다. 아무 걱정 없이 근무 태만과 일탈을 일삼던 우리는, 중심 상권이 변하면서 함께 변화를 맞게 되었다. 원래 농지이며 개발 제한구역이었던 바로 옆 동네의 제한이 우연히 풀리고 거기에 새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예측도 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던 일이었지만, 무지했던 탓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게 우릴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저기 새로 생긴 건물 봤어? 예쁘게 인테리어 했던데?"

"어, 근데 보고 있으니까 묘하게 불안한데. 저쪽이 위치가 더 좋아 보여."

"에이, 뭐 영향이 있겠어. 괜한 거에 신경 쓰지 말자."


불안해하는 남편의 말은 점점 불길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사업장이 있던 건물 빼고는 다 공실천국이었던 이 시골마을에서, 새 건물들은 명실상부한 새로운 챔피언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었다. 금세 이런저런 업종들이 들어와 건물이 꽉꽉 들어찼다. 그리고 우리 건물에 있던 발 빠른 가게들이 하나씩 둘씩 새 건물로 이동하게 되었다.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의 진행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랐다. 우리는 옮길 만큼의 여력은 없었고, 남아있자니 불안했다. 결국 타이밍을 놓쳐 남아있는 몇 가게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건물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재계약 문제가 겹치게 되며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날은 재계약을 못하게 된 남편이 제대로 충격을 받고 전화한 바로 그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망했다.

잘되던 사업장 하나를 강제 폐업했다. 초기 투자금과 인테리어비용, 권리금까지 한 번에 싹 다 날렸다. 대출금은 거의 갚지도 못했는데, 빚만 쌓이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보상이라고는 한 푼도 못 받고 그야말로 쫓겨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원망할 대상을 찾았지만, 결국 우리가 원망해야 했던 건 우리들 자신이었다.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은 차곡차곡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손을 쓸 수 있었을 것이고, 손해는 감수했겠지만 문을 닫는 것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온 와중에도, 쇼핑몰의 택배들이 배달되었다는 눈치 없는 알림이 끊임없이 왔다. 프리오더로 미리 주문해 놓은 예쁜 옷들, 가방이며 신발들. 전엔 나를 설레게 했던 저 곱디고운 박스들을 다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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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타고난 건강 체질은 아니었지만 어디 한 군데 아픈 적이 없었던 그가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 매일 꺽꺽거렸다. 식사량은 반으로 줄었고 그 좋아하던 커피도 당분간 못 마시게 되었다. 머리는 갑자기 반쯤 흰머리로 뒤덮였다. 그걸 보면서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람 몸에 악영향을 끼치나 체험해 보는 가상현실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밤이 되면 그가 충격받아서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숨은 제대로 쉬고는 있는지 코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구 들떠있던 마음이 그제야 좀 가라앉았다. 절에서 참선하는 스님처럼 차분하고 고요해졌다. 그때 벌었던 돈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망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젊고 사랑하는 남편이 옆에 있고 우리 둘 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소소하게 살면 괜찮을 거였다. 하루아침에 욕심이 버려진다는 게 신기했지만, 이 고요한 마음을 어떤 것으로도 채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살리는 것만이 나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몇 년에 걸쳐, 망했던 사업장을 정리하고 일으켜내는 과정은 곤욕이었다.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다행히 남편은 그냥 쓰러져있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 성향이 냉철한 분석가이며 한번 몰입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첫 사업의 실패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우리는 몸도 마음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부동산 공부를 다시 꼼꼼히 하며 장소부터 물색했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임장을 다니며 결국,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매의 눈으로 찾아냈다. 이번엔 부동산적인 이슈가 있는지, 다른 변수가 있는지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 꼼꼼하게 체크도 했다. 아기 목욕시키는 엄마처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공들여 하나하나 다시 인테리어도 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을 쏟았다.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 대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같은 결연함으로 무장한 오픈이었다.


사업은 전처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다시 궤도에 올랐다. 우리는 다시 시간의 여유가 생기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삶의 양상은 조금씩 달라져갔다.


hope-5888738_1280.jpg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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