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황금을 탐하던 시기였을지도.
우리의 성장 배경을 잠깐 얘기하자면.
나는 지방의 공무원 집안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검소하고 소박함이 몸에 배신 분들이었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나는 딱히 검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물욕은 별로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내가 까탈스럽지 않고 따지지 않고 수더분해서 좋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돈 모으는 재주는 없었어도 소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예쁜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을 사기는 했지만, 사모으는 타입은 또 아니었다. 친구들이 돈 벌어서 명품을 살 때도 갖고싶단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질구레하게 나가는 돈이 많았다. 어디 한번 나갈 때마다 꼭 손에 쇼핑백이나 비닐봉지 같은 걸 들고 집에 왔다. 자잘한 소비를 많이 하면서 죄책감은 안 느끼나, 가랑비에 옷젖는 소비패턴. 일단 쓰고 남는 돈을 저축했기 때문에 저축하는 돈도 들쑥날쑥, 분명 어디선가 새고 있는 돈의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엄마에게 모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중간에 공부하겠다며 그만뒀다가, 이직을 했다가, 여행 간다며 또 그만뒀다가, 또 이직을 했다가. 일하다 그만뒀다 하면서 모아뒀던 돈을 까먹고 다시 벌기를 몇 년. 저축 개념은 이미 안드로메다행이었다. 게다가 경제나 숫자나 이런 것들은 듣기만 해도 잠깐 머물 새도 없이 휑하니 빠져나가는 경험도 여러 번. 경제 공부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무용지물, 당연히 재테크에도 무지했다. 남편을 만난 시점은 그랬던 내가 그나마 맘 잡고 일을 하던 시기였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서울시내 학군지에 정원딸린 집에서 자란 그는 심지어 집에 요트도 있었다고 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그 집은 일년에 한두번씩 해외여행가고, 때마다 호텔뷔페도 갔다고 했다. 사교육으로 안 배워본 것들이 없을 정도여서 내가 아이 교육 뭐 시킬까 고민할 때마다 방향을 착착 제시해 주는 게 대치동 강사급이다. 서울에 집이 몇채였다더라? 월세 받는 건물이 몇개였다더라?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과거의 영광일 뿐이고, 중간에 부모님이 몇 번 보증을 잘못 서셔서 크게 망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다고 했다. 그랬어도 원래부터 공무원 집안인 나의 친정보다는 잘살고 계셨다. 원래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그래서 남편은 벌 때 벌고, 쓸 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나는 미래에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숫자에 관심이 많고 돈을 좋아했던 덕에, 돈벌기 시작하면서는 어떻게 관리할까에 대해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참을 먹는 것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그 수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결코 우리의 의지만은 아니었다. 당시 남편은 일하면서 사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는데, 거기에 몰두하며 우리의 데이트 양상은 바뀌어갔다. 자영업이란 게 부동산적인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어서, 상가에 대한 공부를 같이 시작해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돌아다니면서 임장을 다니게 되었다. 어찌 됐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와도 잘 맞는 공부였고, 우리는 마치 여행 다니듯 임장을 다녔다. 맛집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경기도 시골의 사업장을 넘겨받게 되면서 거기가 우리의 터전이 되었고,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사업자 대출이란 것도 받아보면서 빚이 생긴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은 대출을 받으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셨었지만, 막상 받아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때 이자만 잘 갚으면 되는 거였다. 남편은 사업장을 운영하고 나는 근처에 취직을 하여 우리는 저녁에 남편이 있는 곳에서 만났다. 남편은 밤 10시쯤 되어야 일이 끝났기 때문에, 그 시간이 넘어서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뼈 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힘든 것도 몰랐다. 너무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돈관리를 내가 시작했는데, 그가 알려준 대로 관리를 해보니 의외로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직접 경영을 하는 게 아니니 경영자의 고달픔은 살짝 뒤로한 채, 운영자금과 생활비를 쪼이는 만큼 더 많은 돈을 갚아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야릇하고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우리가 있던 지역은 경기도 끝자락이어서 한 번씩 서울을 나가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찬란했던 맛집 기행은 거기에서 종료가 되었다. 대신 차곡차곡 돈 갚는 소리만 들리던 시기였다.
사업이 탄탄대로 고속도로를 타면서, 또 대출을 받아 멀지 않은 곳에 사업장을 하나 더 차리게 되었다. 흐름을 잘 탔는지,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인지 그것도 잘되었다. 양쪽이 웬만큼 자리를 잡으면서 직원들을 쓰기 시작했다.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전보다 시간의 여유도 생겼다. 시간이 많아진 남편에게 귀찮은 돈관리를 떠넘겼고, 이제는 우리가 좀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연애 시절, 먹는 것에 미쳐 돈을 써댄 전적이 있었던 우리는 이번엔 스케일이 커졌다.
"우리 내일 쉬는 날인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
"어 좋아. 검색 좀 해볼까?"
"내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거기 갈래?"
"어딘데?"
"백제호텔 뷔페. 가볼래?"
"뭐? 호텔??"
그랬다.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호텔이나 호텔급 레스토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또, 남편은 무슨 날만 되면 명품 매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중에는 뭘 갖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당연한 듯 사러 가고 감사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채로 결제를 해댔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따로 없었다.
직장인 시절보다 훨씬 잘 벌게 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 아름다운 신기루가 사라지면 이게 현실이야 하며 무언가 다가올 것 같은 이상한 불안함을 마음 한켠에 갖고 있었다. 나중에 돌아보며 그때 우린 갑자기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써댔구나 했다. 혹은 순식간에 돈을 벌게 된 졸부들처럼. 알고보면 졸부도 뭣도 아닌 주제에. 아무리 숫자에 밝은 남편이라도 준비없이 훅 들어오는 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차곡차곡 모아 빚 갚고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여러 번.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잘 보이곤 한다. 그 당시 우리의 방탕한 생활은 서로가 너무 가까웠기에 더 절제가 안되었는지도 모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우리는 정신나간듯 달리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의 소비는 강제로 멈춰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