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미니멀라이프의 상관관계
아는 언니의 지극히 주관적인 말에 따르면, 이사 스트레스는 배우자와 헤어지는 스트레스 다음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그걸 1-2년에 한 번씩 했으니, 과거의 나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었던 걸까. 이사 전 후,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우리 집에는 짐이 이상하게도 1-2년마다 1.3배~1.5배 정도 늘어나게 되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이사 시즌마다 소수점만큼의 살림을 버리고 치우고 정리했다. 이삿짐은 항상 6톤 정도로 유지된다.
남편은 정리와는 담을 쌓으신 분이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구렁이 허물 벗듯 바지를 그대로 벗어놓고 바지 두 구멍에 벗은 양말을 쏙쏙 벗어놓으니 말 다했다. 다음날이면 벗어놓은 양말만 옆으로 빼놓고, 그 두 구멍에 다시 양다리를 쏙쏙 넣어 바지를 입는다. 신기한 재주다. (바지 하나를 이틀간 입는다는 본인만의 원칙도 있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사실 남편에겐 정리에 대한 면책 사유가 있다. 사업장 폐업 이후로 남편은 쇼핑을 끊었다. 쇼핑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철저히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행력이 대단한 독한 사람이라 한번 결심한 건 끝까지 해낸다.(내가 제일 닮고 싶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 번째 이사하기 전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봄가을 : 바지 2벌, 스웻셔츠 3벌, 긴팔 잠옷 2벌, 간절기 아우터 1벌
여름 : 바지 2벌, 티셔츠 3벌, 반팔 잠옷 2벌
겨울 : 니트 3벌, 얇은 패딩 1벌, 두꺼운 패딩 1벌
그 외 : 정장 1벌, 언더웨어 7벌, 겨울용 히트텍 2벌, 운동화 2개, 크록스 1개
옷장에 있는 본인 옷을 모두 다 꺼내서 한두 시간 정도, 한차례의 토너먼트를 열었다. 예를 들어, 봄가을용 바지 중에서 밝은 색 하나, 어두운 색 하나. 스웻셔츠도 6-7벌 중에 바지와 어울리는 세 벌만 남기기. 간절기 아우터 중 딱 한 벌... 이런 식으로 옷장의 모든 옷들을 저렇게 딱 정리했다. 안 입는 카테고리의 옷들은 전부 다 버렸다. 가끔 사고 싶은 예쁜 옷이 생기면 저 리스트에서 겹치는 한 가지를 꼭 버리고 그것을 사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사지 않고, 정말 정말 갖고 싶으면 하나 사서 바꾼다. 그 덕에 엑기스만 유지한 간소한 옷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간소하니, 사실은 옷을 아무리 막 어질러놔도 너그러워진다. 많이 어질러봤자 두세 벌 정도가 다니까. 그에게는 더 이상 어지를 옷이 없다.
옷장을 간소화하니, 옷 입을 때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시간이 절약된단다. 그리고 옷을 별로 살 일이 없으니 옷 사는데 쓰는 시간과 돈을 또 한 번 아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도 옷장 정리를 제안했다.
"우리 네 옷으로 또 한 번 토너먼트를 열자. 내가 도와줄게."
"어... 그래. 한번 해보자."
달갑지 않은 도움이었지만, 일단 옷장 깊은 곳에서 몇 년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겨울 아우터들을 가져왔다. 열개는 족히 넘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옷도 있었다. 다 버릴 심산으로 꺼내어 왔지만, 그 옷들을 보는 순간 옛 생각들이 소로록 떠올랐다.
'이 옷은 예전에 친구들이 예쁘다고 했던 옷이야.'
'이 옷은 일 분컷으로 품절됐던 옷인데, 운 좋아서 샀지.'
'이 옷은 누구 결혼식에서 입었던 옷인데, 그날 내 모습이 엄청 맘에 들었어.'
옷과 추억의 연결고리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그중 버릴 수 있는 옷은 겨우 세 개 남짓. 그마저도 버리려고 마음을 먹으니, 그 옷들을 안 입던 이유들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났다. 다시 한번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싶어졌다. 옷들과 작별하는 시간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 헤어지는 시간만큼이나 애틋했다.
여보, 난 아무래도 안 되겠어.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해.
옷장 정리가 급속도의 물결을 타게 된 건, 네 번째 이사 시기와 맞물리게 되면서다. 이사하게 되는 집이 지금보다 작은 평수여서 무조건 짐을 줄여야만 했다. 이사 갈 집이 정해지고는 처음엔 한 두 개씩 버리기 시작했는데, 그 집을 실측하러 한번 다녀와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버려도 되는 옷들을 산처럼 쌓일 만큼 골라냈다. 최대한 옷과의 추억을 생각하지 않고자 감정을 빼고 정리를 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추억의 추자가 떠오르기도 전에 손을 재빨리 움직였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도 하고, 엄마가 오셔서 가져가 나눠주기도 하고, 그래도 남는 옷들은 의류수거함으로 들어갔다. 네 번째로 이사를 하게 된 집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미니멀라이프가 실현이 되나 싶었다.
실제로 그 1년은 가장 소비를 줄인 해였다. 수납할 공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섯 번째 이사를 하게 되며, 우리는 다시 예전 평수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다섯 번째 이사는 내 생전의 이사 중 가장 쉬운 이사였다. 평수를 줄였다가 다시 늘린 집에서 짐이 얼마나 없는지, 수납장이 텅텅 비었다. 아무리 봐도 집이 허전했다. 옷장도 너무나 텅텅 비어있었다. 미니멀라이프의 산 증인은 제발 수납장이며 옷장을 채우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내 눈엔 집에 너무 짐이 없어 인간적이지 않았다. 마치 도둑맞은 집처럼 보였다. 지금껏 안 사서 그렇지, 사실은 필요한 게 얼마나 많았다고. 어느새 택배박스는 하나씩 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쇼핑몰 클릭병이 또다시 도졌다. 물론 예전처럼 소비왕의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자잘한 소비 패턴의 부활을 알리는 택배기사님의 알림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찔끔찔끔 뭔가가 배달되면서, 가랑비에 또다시 옷이 젖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의 택배박스가 못마땅했겠지만 그걸 입으로 꺼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에 말이 많고 한 번씩 촌철살인을 날리는 성격과는 달리, 그만 좀 사라는 말을 분명하고 싶었을 텐데, 삼키고 또 삼켰다. 한 번은 궁금했던 내가 물었다.
"왜 나한테 그만 좀 사라고 하지 않아?"
"내가 사지 말라고 해서 안사면, 나중에 더 터질 수도 있거든. 때 되면 그만하겠지라는 믿음도 있고, 지금은 감당할만하기도 하고. 여기서 더 늘리지만 말아줘."
여보, 나도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이는 걸 어떡해. 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vip 감사 선물을 받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난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가 또다시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던거야. 노오력이 필요하겠지만, 줄여볼게 나의 소비. 당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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