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쇼핑이 취미입니다만

자꾸만 전집을 짊어지게 되는 이유

by 초코파이

남편과 내가 둘 다 돈을 아끼지 않는 분야가 딱 하나 일치하는데, 그것은 책이다. 남편은 한번 망하고 나서부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성인의 가르침을 본받아, 본인의 노력으로 독서광이 되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은 경제서적이었는데, 경제 관련 책들을 500권 이상 읽고 도사처럼 통달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경제학과 인문학이 짬뽕된 책들로 넘어갔다. 그 책들을 또 한참 읽다가, 요새는 인문학, 철학, 자기 개발서 등등 장르 가리지 않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가려서 읽고 또 읽는다. 소설이나 에세이 빼고는 다 읽는 것 같다. 그쪽은 실용적이지도 않고, 본인 취향이 아니라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과 정반대의 책 취향을 가졌다. 남편이 쳐다도 안보는 실용성 제로라 칭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만 읽는다. (소설이나 에세이가 인간관계와 그 내면을 배우는데 얼마나 유용한데, 실용성 제로라니.) 여기서 조금 확장하면 인문학이나 교양, 거기까지가 나의 한계다. 경제 분야의 책은 읽기 시작하면 3분 안에 집중력이 흩트러져 어느새 나의 손이 인스타그램을 접속하고 있다. 가끔은 조금 더 꾸역꾸역 집중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기도 한다. 나에게 경제서적은 수면제라고나 할까. 그나마 독서광이자 설명광인 남편에게 귀동냥으로 듣는 책의 내용으로, 이미 경제 서적들을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는 중이다. 마치 대치동 강사에게 핵심 내용 강의를 듣고 오는 느낌이다. 떠먹여 준 중심내용 꾸역꾸역 억지로 먹고, 딱 그만큼 겨우 담아내는 안타까운 경제분야의 책 소화력.




책의 취향이 다르듯, 책을 사는 방식도 확연히 다르다. 남편은 미니멀리스트의 선두주자답게 한두 권씩 사서 다 읽고, 또 다음 책들을 산다. 어느 정도 책이 쌓인 것 같으면 소장하고 싶은 책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처분한다. 그리하여 남편의 책은 우리 집에서 책꽂이 한 칸 정도. 그것도 제발 한 칸만 남겨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여 나와 아이의 책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한 결과이다. 그리고는 제발 자기 칸에 침범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그 소중한 한 칸을 눈물겹게 지켜내고 있다. 책꽂이 한 칸에 담긴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맥시멀리스트들은 다르지. 책을 한 두 권씩만 사는 건 왠지 뷔페에 가서 한 접시만 뜨고 계산하러 가는 것만 같다. 책장을 새로 구입할지언정, 사고 싶은 책을 외면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사고 싶은 책은 다섯 권씩, 열 권씩 사놓는 게 정석이요, 장바구니에는 이미 내 책과 아이책을 합해서 100권도 넘게 있다. 가끔은 남편이 산 책과 내가 산 책이 겹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사정없이 흔들리는 그의 동공을 보면 난감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가 없을 때 택배 상자를 뜯는 게 나의 오랜 습관이 되었다.


아이의 책에 관한 우리의 견해는 어땠을까.

물론 책에 대한 방향성은 같았다. 책을 많이 읽혀 독서를 좋아하게 되면 결국 나중에 아이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우리의 그러한 믿음 덕에 누워있던 아기 시절부터 남편이고 나고 틈만 나면 목이 터져라 매일매일 책을 읽어줬다. 더 커서는 세이펜을 쥐어줘 봤는데,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 세이펜이란 신문물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이러다 책까지 거부할 태세여서 다시 우리의 목을 희생하게 되었다. 같은 책만 몇 십 번씩 읽어달라고 하던 시기에는, 핸드폰으로 책 읽는 걸 녹음해 놓고 립싱크를 하기도 했다. 아이는 헷갈려했지만, 어쨌든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어린이로 자라났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책과 친구를 선택하라면 항상 책을 선택하는 아이. (이 부분은 관계지향적 성향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baby-5953965_1280.jpg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하지만 아이의 책을 사는 행위에 관한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특히 전집. 그놈의 애증의 전집.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니, 전집 열풍이 휘몰아치며 찾아왔다.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들로부터 사야 한다는 전집 목록을 받았다. 살펴보니, 내가 읽어봐도 흥미로운 책들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두 질 정도는 별생각 없이 샀고, 아이도 틈만 나면 꺼내보며 즐거워했다.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횟수도 늘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볼수록 나의 책욕심은 늘어만 갔고, 사야 하는 전집 리스트도 내 욕심에 정비례하며 늘어갔다. 처음엔 못 본척하며 내 의견에 동조하던 남편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전집을 보며 부르르 떨게 되는 전집혐오증이 생겼다. 뭔가 사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많이 놓은 그지만, 전집에 관해서는 꼭 안타까움을 담아 독립 투사가 되어 한소리, 두소리씩 늘어놓는다.


"그래, 출판사는 책을 한 권씩 만드는 것보다는 전집으로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겠지. 그래야 훨씬 많이 팔릴 테니까. 그렇다고 엄마들이 그런 마케팅에 넘어가서 꼭 전집을 살 필요는 없잖아. 한 권씩 사면되지. 단행본으로도 좋은 책들이 많잖아.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히든가. 그래야 아이도 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거고. 저렇게 집에 책이 늘어져 있으면 애가 책에 질리게 될지도 몰라. 나도 보기만 해도 질리는데. 그리고 봐봐, 책 꽂을 데도 이제 없잖아. 설마 내 칸에 책을 꽂겠다는 건 아니지?"

출판사적 관점, 소비자적 관점, 공간적 관점에서 열심히 분석하고 의심을 담은 감정적 호소로 마무리. 매번 같은 레퍼토리이고 귀는 아프지만, 마지막 남은 자투리 공간을 지키고자 하는 애국 열사의 마음. 나는 그의 의견을 백 번 이해한다.


"아니, 전집은 일단 검증된 시리즈가 많다고. 그런 걸 사면 내가 책 고르는 시간을 줄일 수가 있잖아. 안 그럼 하나하나 책을 보고 골라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번거롭다고. 그리고 단행본도 안 사주는 게 아니야. 단행본 좋은 책+전집 좋은 책 이렇게 다 읽히고 싶어. 지금은 이 책 저 책 다 좋아하고 찾는데, 이럴 때 다양하게 읽히면 책 편식을 안 하는 애로 클 수 있대. 그래,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지. 근데 그거를 찾고 빌리고 가져오고 반납하고 이게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가 않아요. 시간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연체왕인지 알아? 전에도 해봤는데 결국 몇 주씩 책을 또 못 빌리게 되었다고."




아무리 이 한 몸 다 바쳐 목에 피나도록 투쟁에 투쟁을 거듭해봤자 소귀에 경읽기. 결국, 나의 합리화에 투쟁의 끈을 놓고 백기를 든 열사는, 아이가 다 본 것 같으면 제발 정리만 좀 빨리빨리 하자고 합의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오래된 책을 다 보고 새로운 책으로 넘아갔던 아이가 책 정리만 하려고 하면 다시 예전 책을 찾았다. 정리하려고 마음먹거나 빼놓은 책은 귀신같이 알고 다시 그 책들만 본다는 함정. 새 책은 새 책대로, 옛 책은 옛 책대로 모두 쓸모가 있었다. 열사의 항변과 그의 협상은 완패였다. 결국 이 책 저 책 다 짊어진 채로 또 한 번 전집계의 맥시멀리스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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