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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Mar 22. 2024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타본 사람!

저요 저요

2010년 회사를 들어가서 2012년 퇴사를 할 때까지 남긴 것은 단 한 가지, 여자 넷의 여행 계이다. 짧은 회사 생활이었지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나, 그 인연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직급도 성향도 혈액형도 다 달랐지만 딱 한 가지가 일치했다. 다들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퇴근하고 나서도 주말에도 자주 만나는 건 기본이었고, 몇 달에 한 번씩 멀리 여행을 갔다. 경주를 시작으로 가평, 지리산, 제주도, 통영, 남해 등등 우리가 간 곳들이 국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러다 한 명이 퇴사를 하고, 그다음 타자로 내가 퇴사를 했다. 연을 이어갈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리는 여행 계를 하게 되었다. 한 달에 5만 원. 퇴사 후에도 일 년에 몇 번씩 만나 여행 가고 노는 게 이어지다가 나의 결혼으로 뜸해졌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임신하는 바람에 한두 번의 여행 후로는 자연스레 텀이 길어졌다. 사실 임산부인 나는 괜찮았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같이 놀자고 하기가 부담스러워졌던 것 같다. 유부녀는 내가 처음이었으니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셋이라도 놀다 오라고 했건만, 그건 안 될 말이라고 했다. 그 사이 통장에는 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엄마만 찾던 아이가 아빠에게도 가는 그날이.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과의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 어릴 땐 아기를 두고 한 시간만 외출해도 벌벌 떨던 남편도, 아이가 좀 크고 나니 자신이 생겼나 보다. 놀다 오라고 적극적으로 떠밀어주는 걸 보고 이때다 싶었다. 그 당시, 다들 결혼 안 한 싱글이었어서 나만 결정이 되면 여행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돈도 많이 쌓였겠다,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린 우리들. 함께하는 첫 해외 여행지는 발리가 되었다.


막상 출발하는 날이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진 남편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라고 물어서 식겁했다. 사뿐히 무시하고 무사하길 빌어주었지만, 불안한 마음도 두고 떠날 순 없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유독 빨리 흘러간다. 2박 3일이 꿈처럼 지나갔다. 아이와 남편 생각이 났던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달콤한 여행이었다.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맞춰야 한다. 놀다가 아이 잘 시간이 되면 숙소로 들어가 자는 척이라도 해야 하고, 아이 컨디션을 계속 살펴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여행 일정은 짜야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거기에 얹은 양념 정도로 살짝만 추가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한 여행도 충분히 즐거웠다. 행복해하는 아이의 눈빛만 보아도 그 행복에 전염되었다. 하지만 가장 그리웠던 건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 사실을 결혼 후 친구들과의 첫 여행에서 깨달았다.  


밤늦게까지 수영장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하는 게 얼마만인지. 키즈클럽이 없는 숙소를 예약하는 것도, 수영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것도, 자고 싶은 시간에 자는 것도 까마득한 옛날이었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해방감이란. 친구들은 4박 5일의 일정이었고, 나는 남편의 출근 때문에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공항에서 친구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혼자 돌아왔다. 그 비행기에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제 집에 돌아간다는 안도감과 혼자만 떠나야 하는 아쉬움. 아쉬움이 80% 이상 아니었을까. 밤 12시가 되면 무도회장에서 나와야 하는 신데렐라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아이가 더 크면 친구들과 같은 일정을 소화하리 다짐하며, 다음 여행을 그려보았다.


우리의 발리 여행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어렵지 않다. 그로부터 2년 후, 우리는 베트남에 가기로 했다.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조금 생소한 여행지였던 푸꾸옥. 친구들은 나와 다르게 다들 운동 신경도 체력도 좋다. 그래서 그들과 여행을 하면 가장 좋은 점이 새로운 액티비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수영, 자전거, 골프, 테니스등 다들 선수급이다. 그렇다고 무서운 언니들은 절대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잘하는 운동이 없는 편이라 함께 여행하며 경험치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아이에게는 이런 모습을 물려주지 말자 다짐도 하고. 운동을 못해서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놀 때 불편했다. 잘 놀기 위해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 법. 역시 사람은 뭐든 배워놓으면 어딘가에 꼭 써먹을 때가 있다.


푸꾸옥에서 우리가 시도한 액티비티는 오토바이 빌려서 질주(?)하기. 말이 질주지, 그냥 오토바이 타기였다. 처음이라 조금만 속도가 나도 마치 폭주족이나 된 것처럼 무서워서 우리끼리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더 신이 났다. 오토바이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합해졌다. 거기에 핸드폰으로 틀었던 음악까지, 한여름의 하모니가 완성이 되는 듯했다. 마침 해 질 녘이어서 한낮의 더위가 식은, 여름 저녁의 시원한 공기 냄새가 코끝으로 느껴졌다. 가는 길의 핑크빛 하늘조차 분위기를 더해주는 듯 가히 환상적이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마치 우리만의 공간인 양 달리고 또 달렸다. 10대에 만난 친구들은 다시 만나도 10대 같고, 20대에 만난 친구들은 다시 만나도 20대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 만나도 20대.

 


그 사이 친구 둘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상황에 따라 무기한 연장되었다. 당분간은 당일치기나 1박의 가벼운 국내여행을 하기로 한지 꽤 되었다. 그리고 먼 이야기 같지만, 환갑 여행은 제대로 가자며 유럽으로 정해놨다. 우리 넷의 나이는 태어난 년도로 79, 83, 83, 89이므로 3번의 환갑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체력이 떨어지는 내가 영양제를 듬뿍 챙겨 갈 테니, 애들 키워놓고 유럽에서 자동차로 마구 돌아다니자. 우린 아마 환갑이 되어도, 칠순이 되어도 20대처럼 신나게 재미나게 여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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