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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Mar 28. 2024

델리에서 마주한 인도여행의 불청객

첫 해외여행에서 만난 무시무시한 놈들

스물두 살, 처음으로 친구와 한국을 떠나볼 계획을 세웠다. 우리의 목적지는 인도.

첫 여행지로 빡세기로 유명한 인도를 선택한 건, 대학생의 패기와 뻔한 지갑 사정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아마 류시화 시인의 영향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의 시작은 가이드북이었다. 5월부터 그 노란색 책을 전공서적 사이에 끼고 다니며, 어딜 갈지 뭘 먹을지 생각하며 설레는데 온 시간을 다 썼다. 우리는 둘 다 산악부였기 때문에 커다란 배낭도 있었고, 가방을 ‘가득’ 채워 짐을 싸갈 생각이었다. 인도여행을 미리 다녀온 친구의 친구와도 만났다. 그녀가 말하는 인도는, 우리가 책으로 접했던 그곳처럼 재밌고 더럽고 설렘이 가득한 곳이었다. 남쪽은 너무 더워 탈진할지도 모른다는 조언에 따라, 델리에서 북쪽으로 경로를 표시했다. 한 달 동안의 여정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녀의 짐리스트를 참고하여 배낭 한가득 짐도 쌌다. 무려 30킬로에 육박하는 돌덩이 배낭이었다. 배낭을 메고 뒤로 한 번씩 고꾸라지면서도 깔깔깔 웃으며,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해맑았던 여대생 둘은 씩씩하게 출발했다.      


우리의 배낭들. 옛 사진들이 아직 남아있다니.


공항 가는 길은 어릴 적 버스 타고 수학여행 가는 길 같았다. 비행기도 처음, 해외여행도 처음인 촌아가씨 둘은 전날밤 설레서 한숨을 못 잤는데도, 또 잠이 안 왔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다른 친구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보라색 꽃이 그려진 예쁜 비행기였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며 기내식이며 비행기에서 보이는 하늘이며, 발걸음 닿기도 전에 비행기에서만 사진을 수백 장 찍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태국을 경유하는 타이항공이어서, 태국 공항에서 잠깐 쉬며 면세점 구경을 했다가 비행기를 갈아탔다. 반나절만큼의 비행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있으면 델리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넘은 시각. 밤인데도 한여름의 잠깐 식은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인도 사람들은 왼손으로 화장실 처리를 한다는데 수세식 화장실이 없음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기우였다. 공항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시설도 괜찮았다. 인도 엄청 힘들다더니 별거 아니네. 여행할만하겠는데?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뉴델리의 여행자 거리에 도착했다. 우린 조언자의 충고에 따라 호기롭게 숙소 예약도 안 해놓은 터였다. 한밤 중, 택시기사가 여기라며 내려준 그곳은 경악스러웠다. 우리는 돌덩이 같은 배낭을 메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덥고 더럽고 소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리를 헤쳐나갔다. 발을 조금이라도 잘못 디뎠다간 소똥에 발이 파묻히는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었다. ‘하, 집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속으로 여러 번 스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여기부터가 요이땅! 인도 여행의 진짜 시작이었던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가이드북에 표시해 놓았던 호텔이며 게스트하우스들을 힘겹게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책에 나온 간판 하나만 보여도, 타지에서 한국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Do you have a room?”

“No, but no problem. You can find blah blah blah...”

어울리지도 않게 노우와 노 프라블럼이 함께 온다. 내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노 프라블럼이란다. 대체 내 말을 듣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방이 없으면 프라블럼이라고.


열 군데쯤 퇴짜를 맞고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눈앞에 처음 보는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보였다.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각. 이름도 무려 SWEET DREAM. 그 간판은 찬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발 예쓰와 노 프라블럼을 같이 외쳐주세요,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여기도 방이 없으면 밤새 소똥이 널려있는 길에 나앉아야 한다. 피곤한 얼굴로 나온 주인은 역시나 “No problem.”이라고 말하며, 고개로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감격해서 땡큐땡큐 노래로 화답을 했다. 에어컨은 있을 리 만무했고 천장에 실링팬이 하나 달려있었는데, 그것조차 작동되는 게 어설펐다. 1박에 100루피, 당시의 환율대로 계산하면 2500원짜리 숙소였다. 싸다. 우리의 조언자는 인도에서 무조건 부르는 가격의 절반부터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했으나,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곳에서 하룻밤 짐을 풀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러모로 놀라웠던 sweet dream.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숙소가 해결이 되자, 한고비 넘겼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방은 어둡고 곰팡이 냄새도 났다. 그래도 침대며 베개며 집기들은 예상보다 깨끗했다.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왜 이 한밤중까지 방이 남아있었지?' 나의 불길한 질문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친구는 너무 지쳐 씻지도 못하고 코롱코롱 잠이 들었다. 나도 그냥 잘까 잠시 고민하다가 씻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며칠간 너무 안 자서 마음이 붕 떠있는 상태였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화장실 불을 켰다. 뭐가 움직인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피곤하니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드는구나. 화장실은 어두운 방과는 달리, 밝고 하얗고 머리카락 한올 남아있지 않았다. 청결한 것과는 다른, 오랫동안 사람들이 안 쓴 듯한 깨끗함이 느껴졌다.     


쏴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물소리가 먼저였는지, 내 비명소리가 먼저였는지. 나는 보았다. 바선생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사돈에 팔촌에 아주 온 동네 바선생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는, 그곳은 바선생들의 집성촌이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진 물이 하수구멍에 닿자마자 놀란 그들이 뛰쳐나와 막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본 것만 수십 마리였다. 아냐 아냐, 수백 마리였는지도 몰라. 아주 큰놈들, 큰놈들, 중간 놈들, 작은놈들, 아주 작은놈들. 그렇게 다양한 크기의 바선생들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 없이 평화롭게 살던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일기예보도 없이 홍수가 난 꼴이었겠지. 사방으로 흩어지던 그놈들의 경로를 미처 파악하지도 못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고 어찌어찌 물을 끄고 그곳을 뛰쳐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왜 왜, 무슨 일이야?”

어둠 속에서 놀라 잠에서 깬 친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얼른 다시 재웠다. 대책도 없는 이 밤에 친구는 편히 자도록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너도 알게 되겠지, 베리베리 풀프라블럼인 이곳의 실체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졌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서성였다. 저 화장실 문틈 사이로 빠져나오면 어쩌지. 침착하자 침착해. 우리의 조언자는 왜 에프킬라 챙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던가. 잠깐 그녀에 대한 원망도 일었다. 살면서 그토록 에프킬라에 대한 욕구가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잠은 애초에 다 깨버렸고, 그 새벽에 바선생들로부터 우리의 짐들을 지키기 위한 혼자만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무언가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보였다 하면,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했다. 발을 쿵쿵 굴렀다가, 손으로 문을 쳤다가, 막대기 같은 걸로 벽을 툭툭 치기도 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배낭들을 의자 위로 올렸다가 테이블 위로 옮겼다가. 내 옷과 친구 옷도 침대에 뒀다가, 의자로 옮겼다가, 배낭 꼭대기로 옮겼다가 밤새 혼자서 분주해졌다.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의 태도로 그들로부터 우리의 짐을 지켰다. 동틀 새벽녘, 나도 모르게 잠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어찌나 그들의 모습이 강렬했던지, 꿈속에서도 바선생 들을 마주하며 몸서리쳤다.  

    

다음날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다행히도 친구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었다. 아무리 바선생 집단이라도 며칠 못 잔 이의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의도치 않게 꿀잠 자고 일어나 마음은 찝찝했으나, 몸은 개운해졌다. 정신이 돌아오자, 친구와 우리 배낭들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내 가방은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친구 가방은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하, 세면도구를 꺼내느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을 봤을까? 그렇다면 저렇게 평온할 수가 없을 텐데.

“샤워했어? 그것들 봤어?”

“그것들이 뭐야? 뭐뭐? 뭐가 있었어?”

그렇다. 친구는 시력이 안 좋았던 것이다. 비행기가 건조해서 이미 거기서부터 렌즈를 빼고 있던 상태였다. 그 덕에 운 좋게도(?) 바선생들의 퍼레이드를 놓친 것이다. 양쪽 1.2의 시력을 갖고 있던 내 평생, 눈 안 좋은 친구를 부러워하기는 처음이었다.      




인도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무것도 못 본 자와 모든 것을 다 본 자. 렌즈 낀 친구에게 그들을 몽땅 보여주고 싶었으나, 밝은 대낮에 순순히 모습을 보여줄 리 없었다. 대체 그들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밤이 되면 어디서 또다시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델리의 여러 곳에서 어마어마한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겠지. 새로운 곳으로 숙소를 옮기면, 우리에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까. 그 태양은 오늘의 그놈들보다 더 무시무시할까? 류시화 시인은 쥐들이랑도 같이 잤다는데, 바퀴벌레가 뭐 대수인가. (집단이라 대수이긴 했다.) 인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훠얼씬 더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P인줄 알고 살았는데, 어릴때는 J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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