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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Apr 05. 2024

프랑스에서 맛본 충격적인 음식 3가지

차라리 벌레과자를 씹는 게 나을지도 몰라

맛으로 뭔가를 기억하는 경험은 살면서 엄마 음식 말고는 별로 없었다. 내 혀는 맛에 민감하고 알아채고 기억하는 타입의 혀는 아니었다. 가리는 거 없이 대부분의 음식은 먹을만하면 잘 먹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맛은 맛있다와 맛없다, 이분법이었다. 내가 음식을 기억하는 건 음식에 깃든 추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마 음식에 대한 기억도 음식 자체를 기억한다기보다는,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오로지 맛에 대한, 맛에 의한, 맛의 기억이 생겼다. 추억이며 사람이며 다 빼고 오직 맛. 그냥 맛. 남편은 장금이의 입맛을 가졌다. 맛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런 그와 함께 다니다 보니, 나 또한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갔다. 맛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맛의 세분화를 배웠다. 이 남자, 음식에 대한 평가도 평론가 수준이다. 어딜 가든 시그니쳐 요리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확인한다. 식재료며 조리 방식, 재료의 배합을 하나하나 질문하고 연구하고 또 내게 설명해 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티브이에서 맛집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며 맛에 대한 상식을 키워갔다고 한다. 날 만나기 전엔 맛집 동호회에서 몇 년간 활동한 화려한 이력도 있다. 이 정도로 맛에 진심이었던 맛집 꿈나무가 이제는 맛집 헌터가 되었다.




우리는 프랑스 여행을 할 때 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즉흥적으로 숙소 예약을 하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한 가지는 조리가 되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에 밥을 먹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서 하루 세끼의 밀가루는 거부한다. 젊은 시절에는 하루 세끼 빵만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아서, 여행체질인가 봐 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나이 든 몸은 밥이 아니면 자꾸만 병든 닭처럼 기운을 못 차린다. 짧은 여행은 어찌어찌 버티지만 긴 여행에서는 하루 두 끼 밥을 해 먹고, 점심이나 저녁 한 끼만 사 먹었다. 호텔에 있었던 며칠을 제외하고는 에어비앤비에서 갖가지 한국음식을 다 해 먹었다. 간장, 고춧가루, 매실, 고추장, 새우젓 등등을 소분해서 가져갔다. 열심히 마트를 찾아 재료를 공수해 오는 남편 덕에 김치도 담가 먹었다. 한국에서보다 더 잘해 먹었는데, 사실은 그런 것들이 가끔 사 먹는 맛있는 한 끼를 위한 빌드업이었다. 미식의 나라에서 미식을 제대로 즐겨보자는 큰 그림.


사 먹는 한 끼를 샌드위치나 피자, 쌀국수 같은 걸로 가볍게 때울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코스요리를 먹으러 갔다. 프랑스 코스 요리는 기본이 3코스 정도로 구성이 된다. 전채 + 메인 + 디저트. 메인을 포함하고 전채나 디저트 중에 선택하는 2코스도 가능하다. 여기에 메뉴가 추가된 5코스, 7코스 요리를 파는 식당들도 많다. 맨 처음 프랑스를 갔을 때는 흥분하여 제대로 한번 먹어보고자 5코스 요리를 먹었다가 배가 찢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주로 2코스나 3코스 정도로 타협을 하게 되었다. 배도 배지만, 이렇게 먹어대다가는 거덜 나겠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뭐든 그렇듯, 코스요리도 당연히 파리가 제일 비싸고 시골 쪽으로 갈수록 더 싸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로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기대감이 차올랐던 이유도 가성비 좋은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파리에서는 음식에 대한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식재료가 이상한 것들은 궁금했지만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값이 10-20% 정도 더 저렴한 시골에서는 한두 번은 실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직접 농장을 하며 재배하는 야채들을 식재료로 쓰는 곳도 있었고, 와인 생산국답게 자기들이 직접 담근 와인을 와인리스트에 내놓는 곳도 있었다. 안 시켜본 음식들을 시켜보기 시작하면서, 미각에 대한 경험이 넓어졌다. 대부분의 음식은 무난하게 맛있었지만, 충격적인 음식들도 접해보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음식 첫 번째, 토끼고기. 귀엽고 하얗고 예쁜 토끼만을 생각하다가 메뉴판에 rabbit이 있는 걸 보고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이 래빗이 내가 아는 그 래빗 맞아? 아니 어떻게 그 예쁜 토끼를 먹는다는 거지? 이건 시키지 말자고 했다가, 시무룩한 남편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사실 여보, 우리가 먹는 돼지나 소도 누군가에겐 귀여운 돼지나 소 아니야?"

"그래, 맞네."

그래서 시켜봤다, 토끼고기.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맛이었다. 일단은 너무 질기고 이상한 식감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이 맛은 순대 먹을 때 나오는 간의 말랑말랑하고 질긴 버전 같았다. 남편은 누군가 씹다 버린걸 다시 씹는 듯한 맛이라며, 와인과 함께 먹으니 술조차 깨는 지독한 맛이라고 했다. 아이는 너무 질겨서 질경이야?라고 하면서 도저히 못 씹겠다고 뱉어냈다. 아무리 소스를 듬뿍 부어 고기의 냄새를 마스킹한다고 해도 느껴지는 그 누린내 또한 대단했다.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았던 충격의 토끼고기. 조리법이 달랐다면 괜찮았을까?


소스로 마스킹했지만 절대 가릴 수 없었던 냄새와 식감

 

두 번째 충격적이었던 음식, 비트 요리. 베지테리언을 위한 요리가 따로 있는 식당에 간 적이 있다. 그날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고 가볍게 먹고 싶어서 베지테리언 메뉴를 시켰다. 전채요리는 너무나도 훌륭했다(메인 사진). 소스와 재료의 배합이 아주 찰떡궁합이라 너무 맛있어서,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솟아올랐다. '여기 알고 보니 야채 맛집이었네'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나온 메인 메뉴를 보고 기겁했다. 원래 비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비트의 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맛을 좋아한다. 비트와 김을 레이어한 요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설명 자체는 정확했다는 걸 요리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 요리는 비트 레이어드 지옥이었다. 비트와 김이 몇십 겹은 되는 요리였는데,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다. 비트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비트를 밥처럼 먹으라니 정말 너무한다 싶을 정도의 비트 양에 맛은 또 어떤가. 비트에 김 싸 먹는 맛이었다. 재료 본연의 맛만 너무 살렸고 그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요리가 코스 요리에 나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베지테리언 음식이란 양과 칼로리가 작은 게 아니라, 야채로 고기만큼 배를 채우는 요리였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코끼리가 왜 그렇게 몸이 큰지 알겠네.


사진에선 비트가 작아 보이지만 원근법에 속지 말라. 비트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아이 1학년 때 들었던 방과 후 수업 중에 실험관찰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거기서 어느 날은 미래 식량에 대해 배워왔는데, 식량이 고갈되었을 때의 단백질 대체품을 알려주고, 벌레과자를 받아왔다. 징그럽게 생겼지만 아이는 고소하고 맛있다고 했고, 눈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크게 거부감 없이 먹겠다 싶었다. 프랑스의 충격적인 음식들은 웬일인지 나로 하여금 벌레과자를 떠올리게 했다. 보기에만 충격적인 벌레과자와 맛과 식감이 충격적인 음식 중 어떤 게 나을까. 우리 가족은 모두 차라리 벌레과자 쪽에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베스트 요리는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에서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파리에서 먹은 캐러멜 수플레였다. 사실 메인 요리류는 대부분 다 맛있긴 했지만, 비슷한 패턴이어서 어디가 특출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수플레는 파는 곳이 일단 많지 않고, 수플레 본연의 맛을 훌륭하게 잘 살려서인지 굉장히 특별했다. 파리는 2번을 갔는데, 수플레를 먹으러 같은 곳을 2번 찾아간 걸 보면 말 다한 거 아닐까. 셋이 메인 요리를 하나씩 먹고 수플레를 디저트로 한두개 시켜 나눠먹었더니 딱 좋았다. 이것은 따끈따끈하고 촉촉한 단짠의 정석! 한입 먹으면 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마 파리를 간다면 여긴 또 갈 것 같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수플레
수플레 불쇼!


전에는 오감 중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까지만 경험에 포함시켰던 것 같다. 미각의 경험에 대해선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 이유식을 만들면서 맛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인지했다. 이유식 시작할 때 재료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맛보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 웬만한 반찬은 편식 없이 잘 먹지 않는가. 백종원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그렇게 맛집을 데려갔다고 들었다. 물론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것이 내 요리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처음 접하는 맛에 대한 새로운 경험들은 내게 기분좋은 자극제로 다가왔다. 미각의 세계에 슬쩍 한 발을 밀어 넣음으로써 나의 세계가 한 가지 더 확장된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하면 전두엽이 자극을 받고, 전두엽의 자극은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미각의 경험이 내 전두엽의 방을 똑똑 두드려 새로운 문이 하나 더 열린 셈이다. 글의 소재가 늘어나는 것도 덤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맛집 기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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