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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l 21. 2018

오돌뼈 볶음과 동전 던지기(1)

[지나가는 이야기]#8-1

  “선배, 선배는 왜 연애 안 해요?”

  매콤한 오돌뼈 볶음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던 차였다. 솔로 생활 4년. 잠시 멈칫하였지만 그다지 참신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아. 매워. 급하게 소주잔을 비웠다. 깻잎인 줄 알고 같이 집었던 것이 알고 보니 잘게 썰은 청양고추였다. 어두운 조명 탓이었다. 바닥이 비워진 소주잔에 초록 병을 기울여 잔잔한 물결을 채웠다. 별 시답잖은 질문이라 생각하여 그냥 넘어가려 하였지만 질문자의 눈빛을 보니 그럴 수는 없나 보다. 

  “너도냐? 좀 참신한 질문 없어? 왜 나만 보면 다들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내가 뭐 불쌍해 보이나? 연애 좀 해야 할 것 같고?”

  “어휴. 모르셨구나. 좀 그래요, 선배. 연애하셔야 할 거 같아요.”

  또 시작했구나.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마치 지금 나는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듯 실실 대며 웃고 있다. 나이도 어린놈이 밉상인 듯 밉상 아닌 표정을 지으며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나를 놀려댄다. 싱글싱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결국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도 일단 반격에 나서본다.

  “너 요즘 내가 운동하는 거 몰라? 함 맞아볼래? 멍은 덤으로 줄게.”

  주먹을 들어 위협을 가해보았다. 물론 큰 소용은 없다. 잠시 뒤로 물러서는 척하더니 다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싱글거린다.

  “선배. 그러라고 배운 운동이 아니잖아요. 선배가 최근 자신의 몸에 찾아오는 노화를 자각하고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아는데. 그게 이렇게 삐뚤어진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죠. 안 그래요?”

  막대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테이블에 막혀 팔이 닿지를 않으니 긴 도구를 이용해서라도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다. 계란찜을 퍼먹던 숟가락을 바라본다. 이걸로는 안 될라나?

  “숟가락으로 때리려고요? 에이. 선배, 그러면 안 돼요. 사람이 때로는 쓰지만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죠. 그러니 진정하고 숟가락 그만 쳐다봐요.”

  귀신같은 놈. 말재간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는 놈이다. 소주잔의 물결을 다시 들이 삼킨다.

  “아니. 넌 기껏 사람 불러놓고 왜 딴소리만 해. 본론을 말해, 본론을.”

  “본론? 말했잖아요. 왜 연애 안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부른 거예요, 선배, 연애할 생각 없어요?”

  “연애는 무슨. 소개하여줄 거 아니면 그런 소리 하지도 마라.”

  “오? 마음은 있어요? 소개시켜주면 할 거예요?”

  “미리 말하지만 나 눈 높다. 나 볼 거 다 봐.”

  “솔로 인생 연장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선배, 이제 눈을 낮추고 좀 주변을 둘러볼 때 아닐까요? 언제까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한 번만 더 그 조동아리 놀려봐. 그냥 확. 그리고 내가 어때서? 이 정도면 괜찮지. 왜!”

  “아. 알겠어요. 아니, 그냥 저는 선배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죠. 선배 괜찮은 사람인 거야 다 알죠. 이쁘고 가끔은 거칠지만 기본적으론 착하시고. 그런데 선배가 연애를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

  “넌 연애가 하고 싶어?”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녀석.

  “그게 왜? 물론 처음 썸 탈 때야 좋지. 가슴 떨리고 두근거리고 설레고. 근데 난 이제 지쳤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힘든데 굳이 연애까지 힘들여가면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난 그냥 정시 퇴근과 보장된 주말. 간간히 있는 술자리. 이 정도면 충분해. 너야 젊으니까 뭐 연애가 하고 싶겠지만...”

  “무슨 저보다 한 열 살은 더 많은 것처럼 이야기하시네. 끽해야 3살 차이면서. 그리고 제가 뭐 연애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는데. 저도 은근 까다로워요.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고요.”

  “아, 아무튼. 난 지금이 좋아. 다시 누군가에게 맞추고 그러는 거 이젠 피곤해.”

  “으... 진짜 물기 빠진 상추처럼 말씀하시네. 그러면 선배가 맞출 필요 없이 상대방이 맞춰주고 신경 안 쓰이게 하는 사람이면 괜찮은 거예요?”

  “너 왜 이리 끈질기냐, 오늘.”

  “대답해봐요. 그런 사람이면 괜찮아요?”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다 내가 이해해야 했어. 지들이 나이 많다고 무조건 옳아, 그냥.”

초록 병을 다시 기울인다. 쪼르륵. 왠지 분통이 난다. 거침없이 소주잔을 비운다. 

  “그럼 연하남은 어때요?” 

  “뭐? 이거 어째 많이 본 패턴인데. 이제 ‘그럼 나 어때요?’라고 물어볼 거 같다 무슨.”

  나는 킥킥대며 안주를 집어 들었다.

  “좀 그런가? 그럼 나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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