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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l 22. 2018

오돌뼈 볶음과 동전 던지기(2)

[지나가는 이야기]#8-2

  “니가 어떻긴 인마.”

  설마. 설마 했는데. 오돌뼈를 우물거리던 나는 뻔하지만 그 뻔한 전개에 당황했다. 사례가 들릴뻔한 걸 간신히 참고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농담이라고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그 뻔한 전개로는 그럴 리 없었다. 

  “진심이야? 너 나 좋아하냐?”

  “네. 그럼 안 돼요? 뭘 새삼스레 놀래요. 내가 정말 술 마실 사람이 없어서 선배를 부른 거 같아요?”

  “아니. 그건 그런데. 왜?”

  “왜인지가 중요해요? 그냥 좋아하는 데 이유 있나. 그냥 어느 순간 좋아졌는데 어떡해요. 그러니까 나 어때요?”

  “아니. 잠깐 생각 좀 하고... 아무리 그래도 좀 당황스러워서.”

  “생각할 게 어디 있어요. 내가 말해줄게요. 봐요. 난 선배한테 맞출 수 있어요. 선배가 원한다면 선배가 즐기는 일상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그리고 이전까지 그 몰지각한 인간들이 나이를 앞세워 선배에게 이해를 강요했다면, 난 연하니까 그들과는 다르죠. 연하 안 만나봤잖아요? 그러니 ‘너라고 다르겠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전 다르니까요. 다르다는 자신이 없으면 이야기 꺼내지도 않았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닌 게 아니라. 선배 정말 저한테 아무 감정도 없이 그냥 제가 불러서 나온 거예요? 그것도 단 둘이 술 마시는 건데? 내가 선배 집 근처까지 이 밤에 왔는데도?”

  “그런데 난 니 나이 또래 여자애들에 비하면 상큼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을 거고...”

  “제가 상큼하고, 제가 재미있으니까 상관없어요. 애초에 그래서 선배 좋아한 것도 아닌데요? 선배는 그냥 그대로 있어주면 돼요. 후줄근하게 추리닝 입고 나와도 되고, 피곤한 날은 쉬고 싶으면 쉬고 싶다고 해도 돼요. 저 선배한테 맞추고 싶어요.”

  이제 연애는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전개는 역시 당황스럽다. 얼굴이 뜨겁다.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다행히 눈치는 못 챘을 것이다. 어두운 조명 덕이다. 신파처럼 뭇 드라마에서나 보던 이야기 전개인데. 마음이 이렇게나 동요하다니. 어째 그동안의 관계가 역전된 듯 나는 눈을 피하고 얘는 뚫어지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싱글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다. 창피하지도 않나 이 놈은. 일단 병을 기울인다. 마신다. 쓴 소주가 이번엔 쓰지 않다. 미쳤나 봐. 취한 게 분명했다.

  “누나. 술 그만 마셔요. 혹시 내가 맘에 안 들어요?”

  ‘누나’란다. 이쯤 되니 내 얼굴은 폭발했다. 이 자식 뭐가 이리 능숙해. 원래 능글맞은 놈이긴 했지만 이 정도였나? 

  “너가 맘에 안 든다기보다 내가 준비가..”

  “무슨 준비가 필요해요. 누나, 원래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고 했어요.”

  더 이상 태연한 척은 불가능하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만 같다. 심호흡 두 번. 진정하자. 일단 생각을. 갑자기 팔이 쑥 들어온다. 내 손목을 잡아 손을 내린다.

  “생각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 하면 돼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요. 그냥 내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누나 맘에 들게 못하면 그때 뻥 차요. 손해 볼 거 없잖아요?”

  마음이 진정돼간다. 여전히 심장소리가 지축을 흔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제 눈을 마주칠 수는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놈 떨고 있다. 미세하지만 분명 몸 가장자리가 떨리는 게 보인다. 아닌가. 내 눈이 흔들리고 있는 건가.

  “누나. 누나. 괜찮아요? 취한 거 아니죠? 자. 아직도 결정 못하겠으면 이렇게 해요.”

  뭘 어떻게? 갑자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자. 동전이 앞이 나오면 우리 만나는 거예요. 알았죠?”

  “뭐?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당황하여 항의해보았지만 이미 동전은 던져졌다. 나는 처음으로 동전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말도 안 되지만 동전이 천천히 공중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앞이면 어떡하지? 이 말도 안 되는 내기를 받아줘야 하나? 그러면 뒤가 나오면? 안도해야 하는 걸까? 그 짧은 순간 운명의 기로에 선 것처럼 난 기도했다. 결과는 유치하지만 앞면이었다.

  “앞이네요. 그쵸? 나중에 우기기 없기예요. 분명 앞면이에요.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우리 만나는 거예요. 누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따지고 들면 얼마든 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언제나 끌려다니던 힘든 연애를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내 앞에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웃는 이 남자를 거부할 수가 없었나 보다. 아. 연애는 이제 그만이라 생각했건만. 예상치 못하게 다시 연애 세포가 깨어났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술집을 나왔다. 내가 무언의 동의를 보내자 용건을 다 봤다는 듯 내 손을 턱 하고 잡더니 채 옷을 다 챙겨 입기도 전에 부랴부랴 끌고 나왔다.

  “누나. 집 바래다줄게요.”

  옷을 제대로 입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술집에서 나올 때 잡았던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덕분에 반쯤만 옷을 걸치고 집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이 이렇게나 짧았던가.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이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이대로 들어가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녀석이 또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왜 안 들어가요? 뭐 라면이라도 끓여주게요? 에이. 첫날인데 그렇게 급할 거 없잖아요.”

  “뭐 인마? 라면은 무슨. 꿈도 꾸지 마. 쪼끄만 게. 그냥 너 택시 타는 것만 보고 들어갈 거야.”

  “역시 착하다니까. 그래요 그럼.”

  이 녀석 내게 무슨 최면 거는 거 아닐까? 분명 뭔가 있다. 싱글거리는 저 웃음. 저것만 보고 나면 어찌 되든 상관없어진다. 진짜 미쳤나 보다.

  “어? 택시다. 택시 왔네요.”

  녀석은 손을 흔들며 택시를 불렀다. 또 이렇게까지 금방 택시가 올 건 뭐람. 녀석이 택시를 타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물었다.

  “야. 너 아까 동전 뒷면 나오면 어쩌려고 동전 던진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 어이없네. 뒷면 나오면 포기할 거였어?”

  또 웃는다.

  “아뇨? 다시 던지면 되잖아요? 앞면 나올 때까지.”

  “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내가 또 당했구나. 정말이지 이길 수가 없다.

  “잘 자요. 누나. 그리고 내 꿈 꿔.”

  다시 한번 얼굴이 타올랐지만 분명 차를 타느라 못 봤을 것이다. 나는 그저 소녀처럼 가슴 언저리에서 작게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떠났다. 곧이어 핸드폰이 울렸다. 익숙한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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