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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l 23. 2018

나무젓가락이 부러져서 나는 울었다

[지나가는 이야기]#9

  지난밤 잠을 설쳤던 탓일까. 늦잠을 자버렸다. 8시까지 학교 열람실에 가서 공부할 예정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시계는 이미 10시를 넘어있었다. 알람이 안 울린 것일까? 뜨악한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하였다. 전원이 꺼져있었다. 깜빡하고 충전하는 걸 잊고 자버린 모양이었다. 어차피 연락 올 것은 없었기에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2시간이나 늦잠을 자버려 아침 시작부터 엉클어진 게 마음에 걸렸다. 최근 피곤했던 탓일까? 아무리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세상모르게 잔 것 같다. 그래. 피로가 누적된 탓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기왕이 늦은 거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씻고 가방을 챙기고 날이 추우니 옷을 두텁게 입고 밖으로 나왔다. 먼저 밥을 먹을까 하였지만, 열람실 자리를 먼저 맡아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고 밥을 먹으러 가야지. 열람실 앞 좌석표를 확인하였다. 늦게 온 탓인지 아쉽게도 평소 좋아하던 자리가 이미 차 있었다. 자리가 뭐 대수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 온종일 앉아있을 나에게는 꽤나 중요하기에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물론 자리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결국은 적당한 근처 자리를 선택하였다. 잠깐 앉아서 가방을 정리했다. 왠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 내가 늦게 나온 탓이니. 밥을 먹으러 갈 차례였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학식으로 향했다. 늘 먹던 A메뉴가 품절이었다. 입에 들어가면 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며 맛은 없지만 더 저렴한 B메뉴를 먹었다. 역시나 맛은 없었지만 이만한 가격에 끼니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덕분에 돈을 조금 아꼈다. 위에 음식물을 욱여넣고 다시 열람실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심산으로 책과 공책을 펼쳤다. 의식처럼 귀마개와 샤프 하나 그리고 만년필을 꺼냈다. 예전에는 샤프만을 썼었지만, 요즘은 만년필로 필기하는데 재미가 들렸다. 공책과 만년필 촉 끝이 만나면서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마찰이 좋았다. 물 흐르듯 써지는 잉크의 부드러움도 좋았다. 지워지지 않을 까만 선이 좋았다. 공책을 절반쯤 채워 내려갔을 때였을까? 마찰이 심해지고 촉 끝이 사각거렸다. 잉크를 다 쓴 모양이었다. 여분의 잉크 카트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샤프를 손에 쥐었다. 뭐. 가끔은 샤프도 좋지. 그럭저럭 공부가 되는 날이었다. 한참을 집중하다 갑작스레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음 해놓는 걸 깜빡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람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스팸 전화였다. 그러면 그렇지. 뭘 기대한 걸까. 짜증이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도 몇 통이나 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은근히 신경이 쓰여 그냥 전원을 꺼버렸다. 노트북을 꺼냈다. 몇 가지 확인할 것도 있었고 문서로 작업할 일도 있어서였다. 그런데 노트북 충전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빼놓고 왔나 보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이미 놓고 온 것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체념은 하였지만 계속 앉아서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조금 일찍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섬주섬 짐을 쌌다. 쓸모없는 노트북을 생각하니 괜스레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위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죄다 만원 버스였다. 어떻게든 끼어서 타볼까 생각도 했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다들 바쁘구나. 어쩔 수 없이 버스 몇 대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버스를 탔다. 몇 대를 보낸 덕에 자리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 풍경을 흘려보내다 어느새 내릴 때가 되었다. 늦은 저녁은 간단히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해야지. 집 앞 편의점에 들어섰다. 도시락이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대신 컵라면 하나를 샀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불을 켜고 차가운 바닥에 발을 내딛으며 보일러도 켰다. 간단히 양말을 벗고 씻은 뒤 물을 끓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마우스를 딸칵 딸칵 눌렀다.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뚝. 젓가락이 이상하게 쪼개졌다. 젓가락질을 해보려 손에 쥐어보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갈라져버렸다. 뚝. 눈물이 흘렀다. 뚝. 뚝. 소리 없이 자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뚝. 뚝.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이 부러져서 나는 울었다. 그런 사소한 일에 나는 울어버렸다. 김이 오르는 컵라면을 그대로 놓고 불도 끄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어쩔 수 없었다. 갑작스레 피곤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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