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이야기]#10
처음 본 것은 당신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집 앞 카페를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땀이 줄줄 흐르던 더위가 끝나갈 때쯤이었습니다. 그날 제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좋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우울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날이 더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되려 날이 우중충해서였죠. 더위가 끝나가니 그 빈자리를 놓칠세라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죠. 저는 본디 날씨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인지라 비가 오면 지면에 깔리는 습기와 어둠에 쉽사리 기분이 울적해지곤 합니다. 후두둑 내리는 빗줄기가 제 몸을 짓누르고, 땅에 흐르는 빗물이 저를 잡아끄는 것 같았지요. 그런 때에는 고개는 자동으로 발밑을 향하고 제 입은 한숨을 토해내듯 쉬어 재낍니다. 날씨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지나친 정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좀 더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그날의 우울함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막연하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게 방황하는 사이에 현실이 점점 목을 죄어오던 때였지요. 이대로 괜찮을까? 어떻게? 왜? 의식의 틈 사이를 그런 질문들이 메우던 시기였습니다. 거기에 날씨가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지요.
그럴 때에 당신의 뒷모습을 본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벽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옆에 책을 쌓아두고 공책을 한 권 피고, 만년필을 들고 있었지요. 만년필이라니. 실제로 만년필을 쓰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만년필을 든 당신의 손끝은 어쩐지 다른 장르의 세계 같았습니다. 무어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어쩐지 그리 보였습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도 시시각각 변하는 기억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제가 그런 당신의 뒷자리에 앉게 된 것은 자리가 그곳뿐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부러 훔쳐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연히 그 자리가 남아있었고 그 앞에 당신이 앉아있었을 뿐이었지요. 운명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 역시 필연이었을 거라고 말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필연이든 아니든 저는 그날 그 자리에 앉았고 당신은 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을 주의 깊게 지켜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같이 오는 카페였고,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왔던 제게 사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리 신경 쓸만한 부분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어째서였을까요? 역시 만년필 때문이었을까요? 손에 쥔 만년필이 너무나 생경해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낯설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하지만 단순히 만년필을 쥔 손만으로는 제가 이렇게 글까지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앞에 앉은 누군가를, 손에 만년필을 쥔 사람을,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그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잉크의 자취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가던 이 카페는 북까페로 일반 시중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조용한 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고요함이 언제나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더 조용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런 이곳에 하나 더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냅킨과 설탕, 스틱이 구비된 테이블 옆에 공책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방명록 같은 것이지요. 혹은 그냥 낙서장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잠시 머릿속을 환기시킬 때 집어보면 꽤나 재미있습니다. 대부분은 무의미한 낙서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누가 언제 여기를 다녀갔다느니, 우리 사랑 변치 말자는 커플의 시한부 약속, 과제하기 싫다는 말, 분위기 너무 좋다며 다시 오자는 이야기까지. 별의별 이야기가 섞여 있지요. 가만히 읽다 보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의 작은 조각을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엿보기만 합니다. 손을 내밀어 그들의 영역에 무언가를 더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옆 사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듯 이 작은 종잇장 안에서도 서로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명시된 규칙은 아니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여백이 넉넉한 공간에서 네 땅 내 땅 하며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매일 조사하듯 방명록을 뒤지지는 않습니다. 간혹 생각이 나면 펼쳐보고 하지요. 하필이면 그날 방명록에 손을 뻗은 것을 역시 필연이라 여기실 분도 계시겠지요. 뭐 그렇든 아니든 상관은 없습니다. 물론 제가 그날 방명록을 펼친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지만 그저 단순히 보자면 누군가 제 앞에 앉아 있었고 저는 방명록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럼 슥슥 페이지를 넘기며 무심한 듯 많은 낙서를 지나치는 와중 유독 그 글귀에 눈이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용이 흥미로와서였을까요? 아니면 형식이 눈에 띄어서였을까요? 그 글귀는, 마른 잉크 자욱으로, 무심한 듯, 흘리듯,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비탈길을 구르는 돌멩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날아갈 듯 가볍게, 그러나 절대 지워지지 않을 듯 진하게.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어 가는 것처럼 저는 그 질문에 스며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밑의 현실은 아득히 멀어지고, ‘바닥’, ‘심연’, ‘비탈길을 구르는 돌멩이’, 그 모든 단어가 불처럼 아니 얼음처럼 나를 덮쳤습니다. 아주 짧은 영원의 시간 동안 멀어버린 눈이 초점을 찾고 나서 본 것은 당신의 만년필을 쥔 손이었습니다. 잘못 생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귀가 만년필로 쓰인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게 당신이 쓴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누군가가 쓰고 갔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날 다른 자리에 앉은 이의 필통 속 만년필일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어쩐지 제게는 꼭 당신이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증거는 없습니다. 오직 심증만이 있지요. 하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을 잉크의 진함처럼 명백하고 확고부동한 심증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이른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불에 덴 듯 화끈거렸고, 누군가 그 질문을 내 머릿속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듯했습니다. 잠으로 도피할 수도 없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내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그 돌멩이를 잡아보려 시간을 잊었습니다. 결국, 잠이 들기는 하였지만,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어쩌다 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밤새 온몸이 긴장 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도 감지 않고, 간단히 세수만 하고, 눈에 보이는 옷을 집어 입고 뛰쳐나왔습니다. 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지만 저는 달렸습니다. 조금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횡단보도 빨간불의 거부 앞에서 저는 지하 계단으로 뛰어갔습니다. 고작 2분도 안 되었을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카페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던 저였기에 사장님은 놀란 기색을 보였습니다. 메뉴판보다 방명록을 먼저 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그 글귀를 찾은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게는 만년필이 없다는 사실을요. 지워지지 않을 확신이,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잉크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주문도 하지 않고 그런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장님의 시선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요? 당신은 여전히 그 자리, 제 앞에 벽을 마주한 채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뒤, 당신의 만년필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습니다. 빼앗긴 자유에 온몸을 다해 반항하고 있지만, 아직 되찾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제게도 만년필이 생기기를요. 그리고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카론이 노를 젓는 아케론처럼 검은 잉크를 얻을 수 있을지를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비탈길을 구르는 돌멩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의 만년필이 심연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