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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n 15. 2017

진정한 인연이 된다는 것

사랑을 주세요 -  츠지 히토나리

진정한 인연이 된다는 것


  세상만사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요? 주변에 고민 상담할 필요도 없이 모든 일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그런 삶이 있을까요? 누구나 힘든 일, 괴로운 일, 고민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참 좋겠지만, 쉬이 해결될 거였다면 고민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고민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나요?


  때로는 어떤 고민은 참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고민은 그저 안에 쌓아둘 수밖에 없어서 처치곤란입니다. 가까운 가족, 친구에게 더욱 말하기 힘든 고민은 더욱이고요. 자신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힘든 소리 쉽게 할 수 있는 대상은 흔치 않기 때문이죠. 자칫 나의 고민이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고민을 나누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전혀 낯선 이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전문 상담가부터, 우연히 마주친 사람,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 인터넷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요.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있는 지인들보다 필요한 부분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그 시작과 마찬가지로 스치듯 지나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인연’으로 남기도 하죠.


  특별한 인연…….
  이 지상에 수십억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그런 확률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천문학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만한 인연이었기 때문에 당신도 내게 답장을 보냈겠죠? 나는 그런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리리카씨는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있나요?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사실 낯선 이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님을 압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믿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죠.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져 상처를 받은 리리카는 이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자신에게 왔던 모토지로의 편지에 반감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녀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아주 작은 틈새로 리리카와 모토지로의 인연은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초반에 나오는 모토지로의 제안은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낯선 성인 남성의 편지에 어린 여학생은 의문이 먼저 생길 수밖에요. 그런 의문과 무서움을 모토지로의 방식은 단숨에 불식시킵니다. 이런 방법이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기도 할 정도네요.


그냥 편지를 주고받으면 어쩐지 멋이 없는 것 같아 작은 제안을 하나 해볼까 해요. 나도 때로는 고민거리가 있고 누구에겐가 진실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우리, 서로의 편지를 통해 둘만의 비밀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우리가 주고받는 편지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만을 쓰겠다는 약속을 하는 거예요(우와,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규칙을 정하는 거예요.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규칙! 어이없는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꽤 재미있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서로 우주를 향해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서로가 절대로 만나지 않으면서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펜팔. 이런 관계라면 한 번 믿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요? 모토지로와 리리카는 착실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서로에게 편지를 쓰죠. 상처가 많고 아직 어린 리리카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는 치부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토지로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꾸지람 듣기를 원하지요. 혹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모토지로의 답장에서 진정 상대를 위하는 참된 인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기대하고 있니? 그건 지금의 네게는 역효과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라고 격려하는 소리들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적당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에 끼어들기 곤란하여 거리를 두며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우리는 많이 그러기도 합니다. 서로가 상처받지 않는,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은 그런 거리를 두고 좋은 듯 지낼 수도 있지요. 그러니 모토지로의 사려 깊은 답장은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적당한 거리가 아니라 리리카의 곁에서 그녀의 힘듦을 같이 고민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이지요.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인연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게 두려워 필요한 만큼의 거리만을 유지하는 것은 서로에게 비겁한 행동일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내편에 서서 나를 꾸짖고 나를 위로하고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인연.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정 공감해야만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겠죠. 나도 모르게 사람에게 거리를 두고, 온전히 믿기를 망설이는 요즘.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한발 서로에게 내딛지 않으면 진정한 인연을 만들 수 없음을. 그리고 뒤돌아서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기를.


나는 멀리서나마 너를 항상 응원할 거야.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응원할 거야,, 언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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