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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Nov 04. 2020

난 달에서 왔어요.

난 달에서 왔어요.

남자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여자가 있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깜깜한 빌라 입구에서 흰색 양털 후리스와 까만 슬랙스를 입은 여자가, 흰색 스니커즈 신은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쪼그려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채로. 복슬복슬한 털 뭉치 같았다. 남자는 말했다.

그래요? 이거 우연이네요. 동향인을 만나다니. 저도 달에서 왔거든요.

반가워요.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죠.

달에선 어디에 있었어요?

랑그레누스요. 풍요의 바다 옆이었죠. 그쪽은요?

저는 달 뒷면이었어요.

달 뒷면이요? 거기 사는 사람을 본 적은 처음이에요. 워낙 보기 힘드니까요.

그렇긴 하죠. 뒷면에서는 불안정하다 보니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게 일상이니.

남자는 여자가 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올려보았다.

그래서 달 보고 있었어요?

네. 오늘은 환하게 잘 보이네요.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남자는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척박한 회색 대지로, 돌만이 가득한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

아뇨.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이제 와서 돌아간들 뭘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저곳은 먼지로 가득한 회색 돌덩이에 불과한 곳이라는 걸. 전 이미 이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버렸어요. 물론 여기에서의 삶도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요. 여긴 너무 좁고, 시끄럽고, 마음이 시리도록 고독해요. 별들이 너무 멀리 있어요. 그래서 그냥 가끔 그리워요. 오늘처럼 환하게 보이는 날에는 더욱. 손에 잡힐 듯한 게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여자는 손을 뻗어 허공을 살짝 움켜쥐고는 다시 거두어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여자의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울지 말아요. 어쩔 수 없잖아요.

맞아요. 어쩔 수 없죠. 궁상맞은 일이에요. 허나 울음이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어요.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리워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그때 들었던 별들의 소리가 예전만큼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분명 내가 떠나온 것인데 그게 아니라 쫓겨난 것만 같아요.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든 아니든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어차피 이곳에서 우리는 이방인에 불과한 걸요. 그것도 영원히 말이죠. 우리는 결코 돌아갈 수 없고, 떠나온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우리가 자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다면 떠나지 않았을까요?

아뇨. 그래도 떠났을 거예요. 빠르든 늦든 그건 필연적이니까요.

결국 이런 거군요.

결국 이런 거죠.

남자는 돌아서서 어두운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까만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는 슬리퍼 소리가 희미해지고, 짙은 구름이 달을 가렸다. 흰색 양털 후리스와 까만 슬랙스를 입은 여자가, 흰색 스니커즈 신은 발을 가지런히 모아 쪼그려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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