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5일 열 번째 일기
자극적인 맛이 있다. 일시적이고 단발적이지만 분명 강렬한 중독성이 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하루에 한 번이라도 내가 웃는가’에 대한 실험적인 의문이었다. 웃음의 정도에 경중을 매길 수 없기에, 그저 웃는다 라는 행위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요즘 조금 더 선호하는 감정은 오락적인 폭소보다는 안정적인 미소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웃음이라는 본질이 일치한다면 상관이 없지 않나 싶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웃음은 변화에서 비롯되기보다는 한 순간에 터져 나왔고, 유쾌한 상황이나 멘트에서 시작되고 끝난 것이 많았다.
점심시간에 동기들과 점심을 먹었다. 영하 10도, 혹은 그 이하로 똑 떨어진 기온에 구내식당이 아닌 외부로 나가는 것을 살짝 고민했으나, 한우 샤브샤브는 나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보통 칼국수 면인 다른 샤브 집과 달리 소면을 주는데, 특이한 식감이기도 하고 술술 넘어가는 맛이 있었다. 만 원 가격에 한우 샤브, 소면, 죽, 심지어 김치 맛집! 풍족히 배를 채우고 라운지로 돌아와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한 때 각자의 입맛을 서로에게 권유하며 취향 공유의 관계를 다져가던 사이었는데, 일도 많아지고 삶도 복잡해지다 보니 요즘은 좀 시들해진 찰나였다. 오랜만에 매운맛 대화들을 하고 있자니 잊고 있던 욕망이 차오르는 거다. 무게감은 없지만 무거움도 없는 주제를 가지고 정말 오랜만에 깔깔대며 웃었다. 꼭 여고생처럼.
같은 TF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들 치고는 의외로 매운맛 주제인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좀 그랬다. 뭔가 간헐적으로 다양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벌써 기억이 흐려질 정도로 중요한 주제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대화 당시에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면 사실 회사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별 웃긴 내용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웃을 건덕지가 있다면 모두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갈구하는 걸 수도 있다. 오히려 평안한 상태에서는 웃지 않았을 일에도, 시간에 약간의 느슨함을 주기 위해 작동하는 방어 기제 같은 게 아닐까? 왜냐면, 내가 어제 받은 떡을 오늘 하루 종일 먹고 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웃긴 일은 아닌데, ‘아니, 너는 무슨 떡을 하루 종일 먹고 있어’라는 말이 아까는 너무 웃겼거든.
아쉽다면 아쉬운 점은 이러한 웃음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거다. 당일에야 자기 전 누웠을 때, 한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풋’ 하고 터트릴 수는 있겠지만, 그 대상이 정말 인생을 통틀어 내가 들은 역대급 개그가 아닌 이상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아예 잊히기 십상이다. 다만 이렇게 일기로 기록을 해 두면, 언젠가의 내가 다시 보고 머릿속에서 그 순간을 재생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또, 누가 알까. 이런 소소한 순간과 가벼운 웃음들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될 날이 있을지. 사유가 없지만, 사유가 없기에 보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의 가치를 누가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또, 그 외에도 오늘은 즐거운 일들이 좀 있었다. 데뷔를 했고(내부적이긴 하지만), 일의 흘러감도 나쁘지 않았으며, 하고 싶었던 부류의 추가 업무를 진행했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건들이 꽤나 있었다. 조금 더 정돈된 말로는 감성과 이성이 모두 충족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제목을 [인스턴트]로 적은 이유는(오늘 저녁으로 컵라면을 먹어서만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 글은 대체적으로 ‘외적 웃음’으로 이어지는 일들에 기반한 내용을 기록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만족감은 있었지만 무언가 유효한 웃음이나 미소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 이를 주제로 삼아 얘기를 풀기보다는, 조금 더 관련성이 높은 스토리를 적고 싶었다. 뭐,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임에는 변함없기에 이렇게 한 단락으로 작성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느덧 열 번째 일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수가 아닐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강제적으로 (몰아서) 썼던 일기 이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유형의 글이 10회를 돌파했다는 것이 내게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시작은 우울이었다. 나의 무거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도피책이었다. 원인, 결과, 문제, 해결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섞인 머릿속보다는 무언가라도 스스로 온전히 인식하기 위해 가시적으로 구조화할 방법이었다. 그래서 삶이 좀 나아졌냐고 하면,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나의 변화는 소소한 지라. 그럼에도 나를 기록한다는 것은 나를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나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모든 웃음과 미소는 가치가 있으니, 내일도 웃을 일이 생기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