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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케이크

2025년 2월 7일 열 두 번째 일기

by 무무

나는 그렇게 군것질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쫄깃함이 강한 망고젤리, 옹골진 식감의 곤약젤리, 겨울 시즌에만 나오는 햇감자로 만든 감자칩, 4개 들입의 종이팩 과일주스, 100% 사과즙, 버터향 가득한 소금빵, 찰기가 느껴지는 베이글, 삼각 팩에 든 커피우유, 제로콜라. 그리고 오늘은, 구내식당에 나온 치즈케이크.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고, 기숙사를 나온 후. 언제나 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고민은 바로 ‘오늘 뭐 먹지.’ 아주 짧지는 않지만 그다지 길지도 않은 입을 가진 나는, 입맛의 증감이 큰 편이다. 입맛이 돌 때는 배달을 하든, 자주는 아니지만 만들어 먹든, 나가서 사 먹든 어떻게든 챙겨 먹지만 입맛이 없을 때는 잘 먹지 않을 때가 많다. 한참 입맛이 없다 요즘은 비교적 잘 챙겨 먹고 있는데, 살이 좀 찌더라도 챙겨 먹을 때가 더 컨디션이 좋다. 너무 찌면 안 되겠지만.


아무튼, 입맛이 없을 때는 떠오르는 메뉴조차 없다. 누가 차려주면 먹는다고 해도, 굳이 직접 찾아 먹고 싶지는 않은 기분. 그렇기에 굳이 메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급식, 학식, 구내식당은 어쩌면 나에게 아주 적합한 식사 방식일지도 모른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어도, 알러지가 있는 음식이 아니라면 거부감 때문에 못 먹는 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바로 구내식당. 지금은 어느 정도 입이 익숙해져서 예전만큼의 감동은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고민 없이, 균형 잡힌 식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을 일이다. 밥 혹은 면, 국, 김치를 포함한 반찬 세 가지, 샐러드나 과일, 디저트. 가끔 국 대신 음료. 선택지는 A와 B코스로 2가지. 보통은 이런 구성이고, 옛날 학교 다니던 시절 잔반 없는 날 같은 메뉴가 나오면 좀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은 OO천국의 스페셜 정식을 모방한 메뉴였다. 돈가스, 샐러드, 김밥, 쫄면 등의 구성이었고, 디저트로는 약간 생뚱맞은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뷔페에 있을 법한, 넓은 사각형 치즈케이크를 살짝 긴 직육면체 모양으로 잘라둔 모양이었다. 보통 뷔페에 가서 그리 생각 디저트를 먹어보면 생각보다 별로일 때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하며 작은 조각 두 개를 담았다.


적당히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치즈케이크를 입에 넣었는데, 치즈케이크 특유의 시큼한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아주 괜찮았다. 두 개 밖에 안 가져온 것을 후회했는데, 옆 자리 동료의 치즈케이크와 나의 쫄면을 교환해 약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서로 음식 품앗이를 하는 게 뭔가 급식 먹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에서 오는 기쁨은 분명 있다. 어떤 문제가 있어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가장 흔히 하는 위로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일 정도니까 말이다. 밥심(꼭 밥이 아니더라도 음식심?)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가라앉을 땐 아무것도 입에 대로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하루를 또 보낼 힘을 얻으려면, 무엇이든 넘어가는 음식을 찾아야만 한다.


음식과 관련된 맛있는 추억은, 언젠가의 나에게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무기력함이 쏟아지고, 입맛이 없고, 하루가 지겨울 때. 옛날에 맛있었던, 혹은 내가 좋아하던 음식에 대한 추억이 나를 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 내 기억에 새로이 저장된 치즈케이크 한 조각처럼.


요즈음 느끼는 건, 생각보다 내가 웃는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매일 하루에 한 번은 폭소를 하는데, 사실 그게 기록하기에는 애매하거나 중복되는 주제가 많다. 그래서 약간의 새로움에 대한 웃음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데, 폭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에 그칠 것 같더라도, 그냥 한 번 웃어보는 거다. 내가 지금 좋은 기분을 지니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물리적으로도 인지시킬 수 있도록. 물론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으면 복이 온다고들 하니까! 그럼, 내일도 웃을 일이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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