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8일 열 세 번째 일기
늘어지는 주말이었다. 목표로 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휴일 치고 빠른 기상이기는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습관이 된 것만 같이, 보리차 티백 한 잔을 뜨거운 물에 우렸다. 무조건 냉수,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물, 귀찮기는 하지만 가끔은 굳이 얼음을 얼려가면서 까지 차가움을 선호했던 것 치고는 꽤나 큰 변화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많은 주말이니, 여유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딱 2주 남은 자격증 전체 시험 범위 2/5 정도에 대한 암기. 모든 내용을 정리한 건 아니고, 인터넷 교재에 기출을 풀고 생긴 오답(때로는 정답 중 헷갈렸던 선지들도)을 기록하며 찬찬히 쌓아가고 있는 요약집이지만.
높은 점수를 목표로 하는 시험은 아니고, 커트라인만 넘으면 60점이나 100점이나 똑같은 게 자격증이기에. 스스로 큰 부담은 가지지 않으면서도 이왕 공부할 거 어느 정도는 제대로 하면 좋으니까. 아예 수리 시험이 아니라면 모든 과목은 일정 부분 이상의 암기를 필요로 한다. 사견으로는, 어쩌면 암기가 제일 필요 없는 시험이 수능이지 않을까 싶은데(아예 필요 없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특히 탐구. 그렇지만 다른 과목들도 단순한 ‘암기’가 필요할까? 이름이 수학 능력 시험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지. 수능과 입시에 대한 고찰은 언젠가 다시 풀어볼 생각이다. 세 번의 수능에 대한 조금 안 평범한 일대기 정도로), 수능이 끝나면서부터 접하게 된, 대학 공부를 포함한 자격증 공부는 대부분 약간의 이해와 다량의 암기를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대입 후 현타를 느꼈던 적도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다름의 암기법을 만들어 암기를 하고는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암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내가 암기하던 분량과 속도, 방식을 보면 나도 몰랐던 재능을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암기 방식은 이렇다. 옛날엔 종이로 프린트했지만, 지금은 태블릿. 한 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찬찬히 읽는다. 중요해 보이는 내용은 빨간색으로 표시도 한다. 입으로 중얼거리며 뱉어보기도 하면서 한 페이지를 완독하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리가 되면, 태블릿을 덮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는 것처럼 위에서부터 내용을 전개한다. 한 페이지를 다 읊고 나면 다시 태블릿을 켜고, 헷갈렸던 부분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표기를 한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은 후, 또 설명 반복. 두 번째에도 헷갈렸던 부분 혹은 애매하게 사용한 단어들은 파란색으로 표기. 그러고 나면 계속 설명을 반복한다. 설명을 반복하면서 익숙한 부분들은 정확한 단어를 쓰게 되고, 그렇게 데이터들이 잘 정리가 되면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올 자리가 만들어지니 처음엔 명확하지 않던 부분들까지 필기와 똑같아지는 거다.
사실 방식을 나름대로 구현했다 뿐이지 그냥 통째로 외우는 거긴 하다. 그래도 산발적으로 외우는 것보다는, 몇 페이지(페이지까지는 잘 안 외우기는 하는데), 무엇과 관련된 개념이었고,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이런 식으로 암기를 하면 무작위로 머릿속에 넣는 것보다 각 데이터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고 넣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필요할 때 찾아 쓰기 좋다. 물론 이 또한 시험이 끝나면 사라질 단기기억이지만서도, 충분한 기간을 가지고 이렇게 암기를 하면, 복습 시간도 훨씬 줄고(대부분 외워질 만큼 반복한 후에는 그냥 혼자 서서 1~2시간 정도 쉼 없이 떠들다가 마지막에 자료를 한 번만 훑기만 하면 끝), 편하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공부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한참 했는데, 나름대로 오늘 목표로 하던 분량은 다 채운 것 같아 뿌듯한 마음에 기록하고자 했다. 조금 전 샤워를 하고 나와 내용을 한 번 더 쫙 훑어봤을 때는, 당연히 오늘 오후쯤 만큼 완성도 높은 암기가 유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대강이라도 다시 보면 생각보다 내일 아침에 더 잘 기억이 난다. 또 내일 한 번 더 외우면 더 좋아질 거고. 중간중간 약간의 꾀를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열심히 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낮잠 시간을 두 시간 정도 가졌다. 명확하게는 1부와 2부로 나뉜 공부 시간 사이의 낮잠 타임이었기에 약간의 편법이기는 했지만, 결국 낮잠이라는 부채감 덕에 2부 공부까지 무사히 끝마쳤으니. 결국 공부와 낮잠 모두 행운인 셈이다.
저마다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는 늘어지게 쉬고,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는 여행을 다니고, 누군가는 맛있는 것을 먹겠지. 그리고 나는,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했을 때 내 삶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맞다, 라고 단언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나도 너무나 지쳤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기 때문에. 휴식과 생산의 균형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오늘 내 하루가 공부로만 가득 차 있지 않고, 가끔의 휴식과 달콤한 낮잠이 곁들여져 있었던 것처럼. 나름 뿌듯한 하루의 주말을 보냈다. 그럼, 내일도 웃을 일이 생기는 행복한 주말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