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7일 첫 번째 일기
7번 중 5번의 승리. 숨겨놓은 조커로 마지막 패를 내놓았을 때, 남자친구의 입은 이미 옹졸해진 상태였다. 패가 너무 안 좋다고 하면서도 순순히 승복하는 그를 보며 나는 오늘의 웃음을 터트렸다. 색색별로 원활하게 들어오는 숫자 칩과 드문드문 생각의 나래를 넓혀주는 검고 붉은 조커는 나를 즐겁게 했다. 여행지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는 그 지루한 순간을 선뜻 견딜 수 있는 재미였다.
우리는 종종 루미큐브를 한다. 회사 라운지에서 같은 팀 사람들과 가끔 점심시간에 짬 내서 하던 것이 시작이었고, 그 짧은 유흥은 남자친구에게로 넘어왔다. 굳이 칩과 판이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로 게임 방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나와 그는 프라이빗한 한 판을 즐겼다.
시간은 30초. 입장료는 100 코인. 비밀 코드 8자리를 입력하면 게임은 시작된다. 직접 설정한 칼 같은 30초 제한은 야박하지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자동 정렬 기능은 타이트한 시간을 납득하게 만든다. ‘잠깐만’, ‘왜 나한테만 그렇게 엄격한 건데’, ‘아직 움직이는 중임’ 등의 얄팍한 변명으로 시간을 끌 수 있는 현실보다는 좀 빡빡하긴 하다.
생각보다 머리를 써야 하고, 시야를 넓게 확보해야 하고, 왠지 시간낭비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나름의 재미까지 갖추고 있으니. 한 판만 이길 때까지 해야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또 한 판을 이겨보면 또 다음 승리가 생각나는 매력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러다가도 또 금방 질리기도 하고.
가끔, 어쩌면 요즈음은 꽤나 자주. 불안이 파도처럼 나를 덮칠 때가 있다. 한 없이 고요해 보이는 겉과 달리 내면에선 끝없는 소음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삶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 존재 가치에 대한 반추. 의미와 부정. 고뇌와 망각. 시간의 흐름, 그 속에서 흐려지는 게 기억인지, 아니면 나인지.
무거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집중거리가 필요하다. 흔하게는 그중 하나가 게임이고, 나에게도 그렇다. 어쩌면 의미 없을 숫자 맞추기를 위해 내다 쓰는 시간이, 그럼에도 약간의 안정을 가져다 주기에.
사실 루미큐브를 몇 번 해보면 알게 될 텐데, 머리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운이 꽤나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다. 조커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내 패에 들어오는 숫자가 무엇인지, 색깔은 무엇인지. 직접 조작할 수 없는 조건들이 많고(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30개가 넘는 칩을 먹을 때까지 등록 조차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루미큐브 챔피언십 같은 경기가 열리면 순위가 매번 바뀐다고 한다. 실력보다는 운이라는 거다. 그렇게 보면 오늘 점심쯤엔 내가 운이 꽤나 좋았다는 거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같은 시기가 있다.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고, 눈물이 나고, 몸이 무거울 때가 있다. 슬프게도 나는 그러한 자각을 꽤나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자각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순간들임에도.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내 자아가 그걸 놓치지 않고 캐치하는 거다. 에임이 엄청난 내 자아는 요즈음 유독 컨디션이 좋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물리적으로 무겁고 답답해지는 심장이 힘들다.
살아온 기간이 늘어갈수록, 솔직히 말하면 그런 순간들이 드물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냥, 뭐라고 해 본다. 쉽진 않아도 나가 걷기도 하고, 그냥 바람도 쐬고. 별 이유 없이 짧게 떠나도 보고, 오늘처럼 게임을 하기도 하고. 우울을 온전히 인정하기에 아직 난 내 우울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지금은 좀 부정하고 회피한다. 다른 오락거리를 찾는다. 기분이 좋고, 운이 좋았던 찰나의 순간을 끌어안아 본다. 그게, 고작 게임 몇 번에 내린 행운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감사하게도 게임을 하는 그 순간의 나는 웃었고, 즐거웠다. 해가 진 어두운 밤에, 질리지도 않고 다시 성큼 다가온 어둠이 있지만서도. 그럼에도 좋았던 순간이 하나는 있었던 하루였음에, 내일도 웃을 일이 생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