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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제 두 개였으니까

2025년 1월 30일 네 번째 일기

by 무무

억지로라도 웃을 일을 만들려다 말았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걸 시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럴 기분도 딱히 아니었고 그럴 만한 일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우울하기만 했냐면, 그건 또 아니다. 느지막이 일어났고, 따뜻한 아침을 먹었다. 티비를 조금 보다가 어머니 차를 타고 오리 불고기를 사러 갔다 왔다. 거기서 오랜만에 밀크커피를 한 잔 마셨고(여수에서도 먹긴 했지만), 달달한 게 좋았다. 집에 돌아와 불고기를 구워 먹고, 볶음밥도 먹었다. 그리고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핸드폰으로 이력서와 공고를 좀 보다가. 남자친구와 일요일 데이트 일정을 짰고, 지금은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다 쓰고 나면 샤워를 하고, 내일의 상경을 위해 이른 잠에 들 것이다. 이렇게 보면 썩 무난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손발을 차게 만들고, 가슴께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과 일이 오늘도 있기는 했다. 그래도, 애써 무시하자고 스스로 도닥이고 있다. 타인이 밉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던하지 못한 내 성격이 답답하다. 무시하면 되는데.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봤는데,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OO를 하지 마세요’라고 입력을 하면, 뇌는 하지 말라는 말 보다 'OO‘에 집중을 하고, 결국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지 마세요 ‘ 보다는 '다른 것을 하세요’가 오히려 그 대상을 잊기에 효과적이라고.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아무래도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는 게 더 낫다. 실제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면 어느새 그것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몸 어딘가 피가 쭉 빠져나가는 서늘한 느낌이 들어, 정신이 아찔할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가슴은 계속 답답해지기만 한다. 그러니 하지 말자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려야 한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불행은 힘이 세다. 걱정은 무겁고, 고난은 두껍다. 두루뭉술하고, 부드럽고, 말랑한 안정과 행복보다 존재감이 지나치게 센 녀석들인지라.


그래서 일단 다른 것들을 좀 했다. 5,500원을 주고 스케줄 앱을 하나 샀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였을 때 안정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나를 위해. 요즘은 좀 느슨해졌나 싶더니, 또다시 불안과 우울이 나를 덮는 게 기분이 좋지 않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면 자격증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른 취침과 이른 기상을 할 예정이고, 아침엔 걷고,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간간히 데이트를 하고, 이력서를 다듬고, 공고를 찾고, 가끔 지원도 해 보고, 그렇게. 다시 차근차근 움직여 보려 한다. 부디 이 변화의 시작이 나에게 또 다른 길을 내어주길, 아주 간절히 바라면서. 아, 영어 공부도 시작할 것이다. 말하기에서 내게 당장 필요한 건 어휘라는 생각이 들어, 관련 앱을 사용해 볼 예정이다.


마음이 떠난 곳에 더 이상의 애정을 쏟는 건 의미가 없다. 책임감이라는 탈을 쓴 미련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딱 할 만큼 만.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성장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조금 더 나를 위한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나를 아껴주는 마음을 챙기려고 한다. 나를 돌보는 순간들을, 앞으로 조금 더 많이 만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나름의 데드라인을 정해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를 위한 데드라인이다. 부디 나 스스로가 이 안전한 데드라인을 잘 인지하길 바란다. 너무 가슴 깊이 고통을 받아들이지도 말고, 지나가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애꿎은 고민을 안고 있지 말고. ‘어차피‘라는 마법의 단어를 잘 가지고 있다가, 감정이 무거워질 때 꺼내어 들여다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오늘은 아니었지만, 내일은 부디 웃을 일이 하나쯤 생기길 바라며, 수용성이라는 우울을 씻어내기 위해 이만 샤워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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