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 여섯 번째 일기
어느덧 달이 넘었다. 벌써 한 해의 1/12가 간 것이다. 기념할 만한 날이다. 그래서 집 근처의 꼬치구이 집에 갔다. 일본식 야끼토리 이자카야인데, 이 작은 동네에 있어서 감사한 곳(사실 몇 곳 있다. 숙성회 집, 와인 바, 모츠나베 가게 등등)이다. 메인은 바 테이블이고, 안쪽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을 수 있는 4인용 테이블도 몇 개 있다. 나는 언제나 바 끝 쪽 자리에 앉으며, 가장 입구 쪽 자리이거나 가장 안쪽 자리이다. 오늘은 가장 입구 쪽 자리에 앉았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안쪽 자리에 앉을 것이다. 술 마시기 좋은 토요일 밤,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들이 찬바람과 손을 잡고 와서 조금 추웠다.
보통 하이볼 한 잔, 작은 국물 요리 하나, 그리고 3~4개의 꼬치로 시작한다. 상큼한 맛이 고파 패션후르츠 하이볼을 골랐다. 평소 같았으면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따뜻한 도쿠리였겠지만, 도쿠리는 도수가 조오금 있으니 참기로 했다. 꼬치 종류는 꽤 다양한 편인데, 세 보지는 않았지만 20개 언저리 정도인 것 같다. 오늘은 양송이, 마늘, 껍질, 팽이버섯 삼겹살 말이와 명란으로 정했다. 엉덩이 하나는 서비스. 엉덩이라니까 이상한데, 닭이다. 여기는 닭 부위를 엉덩이, 허벅지, 껍질 이렇게 직접적으로 적어놓는다. 기준은 잘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이상 주문을 하면 꼭 서비스 꼬치 하나가 나온다. 메뉴는 랜덤. 기억에 남는 건 양송이인데, 생각지도 않았던 재료가 꽤 마음에 들어 지금은 꼭 하나씩은 주문해 먹는다.
혼술의 좋은 점은, 바로 여유다. 가게 사장님의 음악 취향이 나와 비슷한지 종종 익숙한 노래가 들려오곤 하는데 그래서 평소엔 핸드폰도 하지 않고 노래를 들으며 잔을 기울인다. 다만, 오늘은 뭔가 폐쇄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어 이어폰을 가지고 나왔다. 노이즈 캔슬링으로 잡음을 차단하고 유튜브를 좀 기웃거리다 결국은 적당한 애니메이션 하나를 틀었다.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컨셉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클리셰와 그 클리셰를 바꾸려는 노력의 산물 같은 느낌이었다. 나름 참신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화를 보며 홀짝이다 보니 동떨어진 꼬치구이. 2차전은 생맥주였다. 양송이와 마늘은 밑반찬 같은 메뉴니 하나씩 더 시키고, 주로 입가심을 하기 위한 마무리로 먹는 메뉴 두 개를 더 주문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이 지점에서 멈췄어야 했다. 추가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배가 서서히 불렀고, 탄산이 많은 맥주는 하이볼보다 빠르게 위장을 채웠다. 그러나 시킨 건 먹어야 하니까, 최대한 여유롭고 느긋한 식사를 즐겼다. 마무리 메뉴는 바로 계란구이와 옥수수. 폭신한 계란구이는 데리야끼 소스가 살짝 발려있어 달달 짭조름하고, 옥수수는 버터인지 마가린인지 모르겠으나 고소 짭조름하다. 부른 배를 느끼고 있자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이것을 오늘의 웃음으로 하기로 했다. 2차전을 하고 있을 즈음부터는 자리가 만석이라 웨이팅도 생겼다. 일찍 집을 나선 나를 위한 뿌듯함의 미소 한 번 더.
가게를 나서고 보니 거의 한 시간 반이나 앉아있었다. 혼자서 그만큼이나 즐길 수 있다니, 제법 나이가 든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날이 좀 풀린지라 가게에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시장까지 산책을 갔다 돌아왔다. 입가심으로 세계과자할인점에서 맥주 사탕을 샀는데 뭐랄까, 좀 건강해진 맛이라 아쉬웠다. 예전엔 조금 더 자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그 맛을 그리며 4개나 샀지먼, 하나만 살 걸 그랬나 보다. 뭐, 그래도 만족스러운 저녁을 해칠 만큼은 아니었으니. 적당히 걸은 후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씻고, 또 이것저것 끄적이다 드디어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사실은 꼬치구이 집에 가기 전에,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며 한 번 크게 웃은 기억이 있다. ‘아, 오늘도 또 이렇게 웃게 되는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오늘 일기를 그 이야기로 쓰려했다. 정말로.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놀라울 만큼 새하얗게 사라져 버린 거다. 웃었던 기억은 있는데 왜 웃었었는지를 잊다니. 그다지 건망증이 심한 편은 아닌데, 사라져 버린 기억을 되찾을 도리가 없다. 꼬치구이 집도 잔잔한 미소와 행복을 주었지만, 소리 내어 웃었던 건 아니라 약간 아쉽다. 내일은 기억이 날까? 잊히더라도, 다른 웃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