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3일 여덟 번째 일기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에서 쾌감을 느끼지만 막상 실행하기에는 게으른 편이고, 무난한 삶을 갈망하지만 성취의 쾌감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신정이 지나고 한 달 동안은 규칙적인 생활도, 무난한 삶도, 성취의 쾌감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기에 매일은 너무 길었고, 시간은 나를 괴롭혔다. 계기가 필요했다. 거대한 사유가 아니더라도, 다시 일어날 만한 원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 가지 변화를 줬다. 커피 한 잔 값을 주고 일정 관리 앱을 샀다. 하루를 너무 빡빡하게 채워놓지는 않되 매일 해야 할 일을 몇 가지씩 적었다. 큰 목표를 위해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플랜부터 시작해서 소소하게는 조금 더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습관들 까지. 그 외에도,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영어 공부를 위한 또 다른 앱을 하나 구매 했다. 틈틈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시간까지 끼워 넣었다. 성장에 대한 강박이 묻어 나오는 일정이기는 하나, 나는 사실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게 어떤 것이든) ‘성취’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너무 목표 지향적으로, 경주마처럼 달리다가는 또 어느 순간 지쳐버릴 것을 알기에. 약간의 느슨함을 주기 위해 세 가지의 과속 방지턱을 구축해 두었다. 첫 번째는 바로 이 일기, 두 번째는 (잘 지켜지지는 않는 것 같다만) 충분한 숙면, 그리고 마지막은 보리차다. 왜 보리차냐면, 첫 번째로는 고향에 내려갔을 때 매 끼니 후 어머니가 주시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이 맛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보리차는 그냥 물 대신 마셔도 되는 곡물차 종류라서다.
나는 그렇게 잠이 많은 편은 아니다. 많이 잘 수는 있는데, 다른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굳이 잠을 청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6시간 정도의 수면 정도면 가끔 식곤증으로 하품은 몇 번 할지언정 하루에 큰 영향은 없다. 보통 잠이 늘어나는 까닭은 현실에 있기 싫어서인 경우가 많다.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은 잠이니까. 더욱이 그 고민과 걱정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면 더더욱. 다만 이 잠이라는 게, 물론 좋기는 한데, 너무 중독적이다. 편하니까 계속 잠만 자고 싶어 져 잠이 오지 않아도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다. 그러다 보면 또 잠이 들고.
장기적으로 이런, 수면으로의 도피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원래 일상을 되찾는 가장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거니까. 밤에는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 있는 아주 단순한 신체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튼 그래서, 내 일정표 속에는 아침(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하는 최대의 시간보다 1시간에서 30분 정도 일찍)에 티 타임이 있다. ‘따수운 보리차 한 잔’이라고 적어두었는데, 사실 1시간 일찍 일어나기로 적어두고 30분 정도는 더 잔다. 왜냐하면, 본래 티 타임 목표의 시간에 기상하면서 나의 최소 수면 시간인 6시간을 채우려면, 최소 자정에는 잠에 들어야 하는데. 밥 먹고, 포폴 쓰고, 공부하고, 일기까지 쓰다 보면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거다.
그럼에도, 아침 30분 짧은 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리차 티백 하나에 물을 붓고, 우러나는 동안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약간은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 먹으며, 살짝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쐬면(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컴컴하지만서도) 알람을 듣고 일어나자마자 준비를 하고, 스스로에게 신경 쓸 틈도 없이 바로 출근하는 하루보다는 안정적인 시작이 되는 거다. 오늘 아침엔 그 순간이 문득 행복해서, 심지어 차만 마시는 것도 아니고 전날 밤 쓰던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순간이었음에도 웃음이 났다. 나를 스스로 돌보면서도, 또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내가 좀 기특하기도 해서.
굳이 폭소를 터트린 글감을 쓰라면, 연휴가 끝나고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에서의 농담 같은 것들을 쓸 수도 있다. 다만, 약간 매운맛도, 느끼한 맛도 섞인 그 자극적인 메뉴는 어쩐지 휘발성이 크기에. 웃음의 정도에 경중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요즘의 나는 슴슴한 맛이 조금 더 좋은 것 같다. 단발적인 쾌감과 쾌락보다는 지속적으로 나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조금 전까지도 내 옆에 놓여있던 따뜻한 보리차 한 잔 같은 것 말이다. 그럼, 내일도 웃을 일이 생기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