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시선을 가지기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돈키호테 창립자 야스다 회장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새의 시선과 곤충의 시선을 둘 다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새처럼 날아 세상을 높게 보면서 곤충처럼 눈앞의 것을 아주 정밀하게 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유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대부분 한쪽으로 쏠려있다. 새처럼 높게만 보는 사람은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감각이 없을 수 있다. 반면 곤충의 시선을 가진 사람은 현실 감각만 있을 뿐 크게 보지 못해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는 속물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or 아니 and의 관점에서 보면 어떠할까. 두 개를 다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순차적으로 접근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우선 시선을 높고 넓게 가져야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장자의 말대로 함량을 두텁게 쌓아서 외연을 확장해야 비로소 마이크로 한 시선으로 내려오는 것이 수월할 수 있다. 작은 시선에서 시작해 크게 넓히기는 매우 어렵다. 높은 시선이란 하나의 나침반과 같다. 여행으로 치자면 목적지와 같다. 목적지는 경로를 이탈하지 않게 잡아준다. 사람은 목적지가 가시화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돈다는 실험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일단 이상적인 목적지를 잡고 경로를 만든다. 그리고 경로의 각 단계마다 곤충의 시선인 집중력을 훈련하는 것이다. 물론 실패는 디폴트다. 함정과 지뢰가 무수히 깔려있다. 이것을 극복하게 해 주고 다시 원래의 경로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높은 시선인 것이다.
이것은 나심 탈레브의 바벨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양쪽 극단의 왕국만 수용한다. 애매한 중간 지점은 없다. 이왕이면 아주 극단적인 높은 시선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극단적인 정밀한 시선으로 실행을 해나가는 것이다. 한편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에서 적당함을 이야기한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이 극단은 한쪽만을 이야기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해 현실적인 조언이다. 양극단을 동시에 소유하는 존재는 극소수이고 드물기에 예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나심 탈레브는 바벨 전략이라는 이상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구현하려면 자아를 부숴버려야 하거나 자아를 살해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시선을 먼저 가지려고 노력하며 함량과 그릇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가능하다. 크게 봐야 작은 것들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시선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