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시간
생각보다 나의 치유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희망적인 것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바로 매일 글쓰기라는 루틴 덕분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도 벌써 256일째가 되어간다. 최초에 드래곤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100개의 글을 썼다. 비공개로 작성했는데 이것은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솔직하게 털어놓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101번째 글을 쓸 때 첫 번째 글을 공개로 전환했다. (물론 101번째 글은 비공개이다.) 과거에 내가 쓴 것을 한 번 검토하고 공개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지나간 글은 잘 읽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공개를 하겠다는 설정 때문에 다시 한번 꼼꼼히 읽는다. 그렇게 과거의 나를 한 번 돌이켜 보게 된다. 이것은 시간 차를 두고 진행하는 자기 객관화 작업이다. 100일을 기점으로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며 또한 얼마나 쉽게 환경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지도 알게 된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게 살아가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핵심은 현재를 기록하고 그 기록된 현재가 과거가 되어 다시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임은 틀림없다.
딱 100일 전 나의 글을 보면 재미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라서 상황적인 것도 바로 떠오르면서 글을 읽는다. 그때는 괴로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의 번민은 지나갔고 현재는 사라졌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마치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렇게 나의 단점과 장점을 메타인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아 이런 점은 개선해야겠고 이런 점은 좀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자기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글들을 보면서 상처가 얼마나 깊고 두터운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갖은 노력과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빨리 치유하고 싶은 조급함에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또 다른 방법을 가져와서 시도한다. 다시 좌절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실패의 반복 속에서도 긍정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매일 기쁘게 시작한다. 밤에 좌절해도 다음날은 기쁘다. 이것을 무한대로 반복한다. 나는 참 처절한 인간이다.
그래서 시간은 걸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바뀌었다. 지식은 다양한 분야에서 쌓이고 지혜는 늘어났으며 세계관은 정리되어 갔다. 인생의 비전을 어렴풋하지만 정하기는 했으며 나의 강점과 약점을 인식했다. 제3의 눈이라는 새로운 지대에서 자아와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기 시작했다. 추상적이었던 혼돈의 세계가 구체적인 상태로 인식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가장 보편적이지만 대부분 하기 힘든 고난도 기술을 습득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명료함과 완벽주의에 희생자였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은 얽힘과 움직임으로 되어 있고 그냥 현재에 존재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인생에 대한 많은 의문점들이 풀렸다. 나는 존재하고 선택할 뿐이다. 그렇게 움직임의 에너지로 존재하다가 언젠가는 지구별을 떠나게 된다. 그 끝을 알게 되었다. 결국 끝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은 홀로그램이지만 어떤 홀로그램을 완성할 것인지는 내 선택밖에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