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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정한 Apr 11. 2016

빨간 밤에 아미고

PAPER BOX_55

집까지 한 정거장

앞으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독심(獨心)에 차 있을 때

"그럼 달리지 말고 천천히 앞으로 걷는 거야.

내 발자국이 얼마나 큰지 보고 싶을 만큼."

BGM_일상-Have A Tea


빨간 밤에 아미고


빨간 하늘에 하얀 구멍이 뚫린

깊숙하게, 잠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밤의 채색


누군가의 무릎에 편안히 자듯

빨간 밤의 존재를 모를 야심 중에

하루 터덕터덕

안개를 헤치고

당신은 오고 있다.


이게 꿈이라면

오늘 하루는 빨간 밤에 맡겨

충분히 이 야릇한 감정을 즐길 수 있으련만


걷고 또 걷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내 눈을 헤집고

자꾸만 느껴지는 안개의 일정한 움직임

그 무게가

응당 내가 오늘 흘린

땀방울과 동일하니 느껴지기에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단 생각을 잊고

좋아하는 노래

일만의 내 감정 다 실어

도로를 질주하는 바퀴 소리에 맞추어

불러보고 소리치고


빨간 밤에 빨간 꽃 꽂고

미친 듯이 불러보는

그 기분을 즐겨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을 기력은커녕

머리만 대면 신명 나게 자겠지만


힘내라 아미고

브라보. 브라보 나의 인생아

빨간 밤의 이야기

한 줄 한 소절에

애정을 맡기고...



대중교통에 익숙한 저에게

버스 안이라는 공간은

수많은 감정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면

조금은 피곤함에 무거워있는 버스지만

아침해의 생동력과

사람들의

오늘 하루, 또한 살아간다는 힘이 있는 버스입니다.


퇴근길의 버스는 또한 다른 감정을 안겨 줍니다.

피곤함이 묻어있는 버스이고

사람들의 체중으로 스며있는 버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스마트폰에 심취해 있는 공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루 동안의 피로를 말할 수 있고

기분 좋은 연락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막차 버스의 분위기란

늘 붐비는 버스는 아니지만

하루의 마지막 운행으로 오늘을 열심히 마무리하신

기사님의 손길이 들어가 있는 버스

답답한 감정을 술잔에 덜어내고

알코올 향기가 잔잔하게 퍼져있는,

사람들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버스입니다.

꾸벅꾸벅 창문에 닿을 듯 말듯

조는 것 같이 자는 분들도 있고

열심히 하루 또 공부를 마치고

눈꺼풀이 딱풀이 되어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하늘을 만나기도 합니다.

붉게 물든 하늘.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빨간 밤하늘을 맞이하며

잠시 생각하게 되죠.

이미 발길이 그친 이른 새벽의 밤

홀로 집을 들어가며 빨간 밤에

빨갛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다 할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벽을 달리는 차들이 있는 도로 옆을 걸으며

이어폰을 잠시 떼고

가장 큰 음량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습니다.

흥얼흥얼 거리다 찾은 작은 의자에

몸과 마음을 빨갛게 만듭니다.

목청껏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요.


하루를 이렇게 보냈다는 것.

순식간에 지나간 일주일에

잠시 동안 생각을 잃은 듯

그저 하늘처럼

붉게 물들고 싶습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나의 아미고들과 함께요.


PS : 아미고는 크게는 친구, 작게는 사심 없는 남자친구를 뜻하는 스페인어예요.

빨간 밤, 이어폰이 됐건 의자가 됐건 뭐가 됐건

옆을 지켜줄 수 있는 멋진 아미고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PS의 PS : 왠지 몰라도 이것들은 "남자 같은 친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멋지다는 말이 더 낫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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