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E 4_IN PAPER BOX
항상 청소를 땡땡이치고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친구라서
틀림없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순순히 쓰레기를 들어주었다.
어쩌면 그는 청소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알려주면 제대로 해내는 친구인지도 모른다.
-너의 최장을 먹고 싶어_스미노요루 지음/양윤옥 옮김
BGM_비-폴킴
내리는 비를
촉촉이 감싸는
창문틀 굴절된 노래
자연의 소리를 드러내는
수많은 의성어들이
한낱 의미 없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빗방울을 덮고
잠에 든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간
눈으로 보아왔던 것들이
점등된 흑암 끝자락으로
생각을 소등하는 때
들리고
보이고
하찮은
형상의 사실들이
중요한 것이 아닌
나를 두드리는
심장 가운데
노크
모든 것들이
꿈을 꾸게 한다
빛도 절편(切片)되고
노랫소리는 소멸하는.
그칠 비의
지나치도록 요동친
숨결 같은 움직임
타고 흐르는 밀봉된 깨어남
에필로그로 여러분을 찾아뵈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침묵 속에서도 제 시를 기다려준 여러분에게
반갑고,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드립니다.
난 파도 하면 철썩철썩. 이런 게 딱 머릿속에 있었는데,
오늘 너한테 설명하려고 자세히 들어보니까 '철썩철썩'은 아닌 것 같아.
다 달라. 파도마다 다르고, 날씨마다 소리가 다르고.
근데 꼭 들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냥 파도를 마음으로 느껴, 느낀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 안 들려도 들리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효리네 민박 1 _오픈 8일 차 애월 한담 해변 카페 중
효리누나가 게스트 '정담이'씨에게 했던 말입니다.
잘 들리지 않는 담이 씨에게 효리누나는
파도소리를 표현해 주었죠.
이 장면이 너무도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교과서에서만 배운 의성어들
우린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병아리는 삐약삐약
빗소리는 주룩주룩
파도소리는 철썩철썩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가만히 진짜 소리를 들어보면
참 당연하게도 그런 소리를 내진 않는데 말이죠.
세상을 빗대기 위해 만들어진 소리들을
어쩌면 우리는 더 진실로 믿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너의 최장을 먹고 싶어(스미노요루 작)에도 우리에게 말을 걸듯
대부분
보이는 것만 보고 생각을 결정지으며
너무나도 쉽게 마음을 굳혀버리잖아요.
우리는 그 생각이 완전하다고 믿지만
또 사실, 마음먹은 생각들은
'우리만 정해놓은 하나의 관념'에 그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효리누나의 말
'마음으로 느껴'처럼
순수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을
때 묻은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할 수 있고요.
생각보다 많은 봄비가 내립니다.
거리를 밤낮으로 밝히는 벚꽃들과
꽃비를 싣고 부는 바람들
무겁던 외투를 벗고 하늘거리는 옷들로
한층 봄을 만끽하며
비가 만든 저녁의 음악을 듣습니다.
꽃에 빗방울을 달고
땅에 부딪혀 도로까지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빗소리는
내가 덮고 자기도 충분히 무거운 이불속으로
발 끝까지 나를 들이미는 소리 같습니다.
비가 끝날 것만 같은 느낌
그 느낌이 나를 꿈꾸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봄의 벚꽃
그 생명을 더듬는 노크소리
봄의 시간 속에 이미 들어와 있나 봅니다.
PS : 봄내음 가득 맡으며 다니면 좋으련만, 미세먼지 때문에 요즘 난리입니다.
귀찮더라도 꼭 마스크 쓰고 다니세요. 대신 우린 봄의 분위기에 취하면 그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