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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정한 Sep 20. 2015

무뎌진다는 것

PAPER BOX_15

@일상생활을 찾다

"서리 내린 새벽에 한  번쯤 졸림으로 일어나 한아름 태양을 맞이하라."

무뎌짐이 주는 기본적인 감정들


무뎌진다는 것

                                                             J PARK

아무렇지 않게

지나 보내고


무뎌짐이란 것을 모르고

무뎌져 가며


그 무뎌짐을 알았을 땐

이미 무뎌짐에 익숙해져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잊혀 지면  잊혀지는 대로

그저 초침 움직이듯

다시 무뎌져 가는 것.


정해진 대상조차 기억 안 나고

순간순간의 스쳐감만 기억나며

이리저리 손을 뻗을 땐

조용히 그 무뎌짐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


그래서 그 무뎌짐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


다시금 떠올리면

스쳐짐의 무뎌짐과

잊혀짐의 무뎌짐과

떠오름의 무뎌짐과

소중했던 무뎌짐이

어색함을 모르고

진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오랫동안 글에 대한 영감을 받지 못하면

한 단어만을 써 내려가는 것도 벅차게 느껴집니다.

우뇌에 브레이크가 잡힌  것처럼 마냥

멈칫 멈칫 펜만 굴리다가 말이죠.


기계적인 일상들을 반복하며

세상 그 작은 것들에 집중하기란,

생각이 지치고 몸이 고되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그 현상이 지속되면

이미 무뎌진 감정들이 현재의 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담담하게 지내고

감정 변화에 크게 휘둘리지 말자는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에

자신이 속하게 되기 십상이죠.

더 단단해져 가는 듯 느끼지만

속에선 해결되지 않는 일들과

복잡한 감정들이 뚜껑 열릴 날 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이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무뎌짐"인 것 같습니다.

자신조차  알지 못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오래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세월 가는 지도 모르게 옆에 있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지 오래고

생각하는 것도, 고민하는 것도 비슷해서 담담하게 위로해 준지 오래입니다.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서로의 모습에 적응하고 그 친구의 제스처와 향기에 익숙해진지 오래고

만나자는 약속이 무덤덤해진지 오래입니다.

"힘든 게 익숙해진지 오래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몸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지 오래고

내일이 시작된다는 무기력감에 쌓여 잠자기 싫어진지 오래입니다.


새파란 파도처럼 감정들이 생각납니다.

바위에 부딪혀 파도들이 부서지는 것처럼 감정들이 마음을 헤집습니다.

무뎌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뎌졌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무뎌짐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무뎌짐의 무게는 항상 무겁지만

그 무거움을 덜어줄 때엔 작은 조각 조각으로 떼어 무게를 줄여야 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들, 그 안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신호등 앞에서, 차오는 소리 차 가는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를 듣고

한가로이 내려오는 햇살의 빛과 저녁 별밤의 빛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의 빛을 보고

조금씩 조금씩 떼어내는 것입니다.


새벽은 아침의 다가옴을 준비하며

조금은 차갑지만 활기찬 바람을 만들어내고

잠을 잘 자라고 밤새 공기를 지키던 수증기들이

순수한 수증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서리로 내려 앉고

그제야 태양이 차가운 바람을 사람 냄새나는 온기로

서리들을 나무들의 아침 양식으로 다가옵니다.

무뎌짐의 조각들이 떼어지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PS:무뎌짐이 따뜻한 온기의 의미를 결국 알려주려고 하나 봅니다. 뭐가 되었든 예쁜 세상이 보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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