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BOX_44
거리를 따라 그린다.
종이 한 장에 거리를 만든다.
그 종이에 거리를 담는다.
이 순간을 이해한다.
그대여
걱정거리들로 다리가 무거운
오늘 하루
작게나마 퇴근길 노랫소리에
당신의 감성을 맡겨주어 고맙소.
고민이 밤을 지배하는
그대여
가로등 불 의지하고 이 길을
한 발짝씩 걸어주어 고맙소.
그대여
새로운 세상
한껏 받아들이느라
차가운 공기 이겨내어 고맙소.
머뭇거림이 유난히 많았던
오늘 그대여.
그 머뭇거린 모습을
나에게 잠깐이나마 비춰주어
고맙소.
그대
나에게
상처 하나
보여주어 고맙소.
내가 그대를 이해할
기회 하나
만들어 줘 고맙소.
저도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내가 짊어진 짐, 그 고민과 힘듦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그 고민과 힘듦이 전가된다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 짐을 혼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것이
오해라는 것은 한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이 들어주는 모습을 보고
또는 그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이죠.
'아, 진짜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구나.
혼자 싸매 둔다고 해결이 될 일은 아니었구나.'하고요.
힘든 점을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고민과 무거운 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들어주는 입장에 있을 때에
그 이야기를 "자신"에 대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이야기의 소유를 "상대방"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죠.
그리곤 그것을
점점 "나"로 인해 반쪽이 될 수 있게끔
들어주는 것이겠죠.
고민을 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전혀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고민이 상대방에게로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털어놓음으로써 고민의 반은
공기 속으로 증발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상대방의 어깨에 또 다른 짐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 짐을 같이 풀어헤치고는
필요 없는 것들을 더는 순간이에요.
그러니 여러분
혹시나 그 고민을 꽁꽁 싸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감당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한 걸음,
그 고민을 살며시 건네어만 보는 것도
굉장한 용기를 내신 거예요.
그리고 그 용기는
반드시
무겁게 꾸리고 나왔던 짐을
조금씩 덜어 줄 것입니다.
그대가 무겁지 않게끔요.
당신과
무거움이 덜어진 공기를 같이해서
너무나도 좋습니다.
그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어 준
용기가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
진심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인간이 한 평생 걸었던
모든 걸음을 합치면
16만 킬로미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그 16만 킬로미터라는 장황한 거리를 걸을 때에
서로 힘이 되어 주며
때로는 짐을 덜어 주기도 하고
가끔은 같이 울어 줄 수 있으며
세상을 사랑하며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요.
PS :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다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