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 화백 & 제임스 터렐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youtu.be/gxX_uziJeos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전시회 보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에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전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사방이 흰색으로 칠해진 깔끔하고 단순한 공간과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전시장 바깥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되는데 그렇게 전시를 보고 나오면 현실 속 고민이나 걱정이 조금은 덜 심각하게 여겨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전시장 분위기와 더불어 이런 느낌을 더 극대화시키는 예술 작품들이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독 발길을 붙잡고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는 작품들인데요. 작품과 자신의 감상에 집중하고 무엇 때문에 그 작품에 끌리는지 골몰하다 보면 잡념 없이 작품 감상에만 정신을 집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눈을 감고 차분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인 명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매 순간 수많은 정보와 새로운 소식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면서 잠시나마 무언가에 온 감각을 집중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명상하듯 관람했던 작품으로 윤형근 화백과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지금부터 다룰 작품들은 2020년 봄 PKM 갤러리에서 열린 윤형근 화백의 개인전과 같은 해 여름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Bending Light>에서 전시되었던 것들입니다.
윤형근 화백은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굴곡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다 45세의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청색과 갈색을 섞어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청다색을 만들고 이를 오일에 섞어 면, 마, 한지 등의 천연 소재 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그림의 재료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물감과 캔버스를 주로 사용한 것이지요. 제임스 터렐은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신을 내면의 빛이라 여기는 퀘이커교를 믿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이 빛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조용한 가운데 신도들이 모여 앉아 자신 안의 빛을 찾는 것이 퀘이커교에서 예배를 보는 방식이죠. 이러한 종교의 영향을 받아 그는 빛과 공간을 주재료로 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예술가는 태어난 장소부터 작품의 재료, 작업 방식까지 서로 달라서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닮은 점이 있어서 이들의 작품을 명상하듯 관람하게 되는 것일까요?
윤형근 화백은 면, 마, 한지와 같은 천연 소재를 바탕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제임스 터렐은 자연의 일부인 빛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자연의 일부를 작품의 재료로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을 가지는데 저는 인공적이고 낯선 소재보다는 익숙하고 자연에 가까운 재료들이 훨씬 친숙하게 느껴져서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윤형근 화백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겹의 물감이 번진 흔적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감의 농도와 캔버스의 소재에 따라 다른 속도와 모양으로 번져 나간 흔적들을 한 겹 한 겹 헤아리고 여러 번의 붓질이 쌓여 만든 칠흑 같은 어둠을 들여다보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주변까지 고요해지는 듯합니다. 여러 겹의 물감이 윤형근 화백의 작업을 만들었다면 제임스 터렐의 작업은 여러 겹의 빛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파장의 빛이 어떤 조합으로 섞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빛이 만들어지기 때문인데요. 터렐의 작품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속 빛은 굉장히 섬세한 방식으로 미세하게 모양과 색깔을 바꿉니다. 그 과정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어 집중해서 보았지만 빛은 느린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화면이 맨 바깥 벽인지 안쪽 벽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고, 빛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알 수 없어서 이 작품은 빛이 부리는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두 예술가는 작품에 담는 내용 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윤형근 화백의 그림에서 칠흑 같이 새카만 부분을 보면 물감이 캔버스 위에 쌓이지 않고 완전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께나 부피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깊이만 존재하는데 윤 화백이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느낀 좌절과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임스 터렐은 빛을 음식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는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무언가를 비추는 빛이 아니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내면의 빛을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의 종교가 빛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렇게 두 예술가의 작품엔 윤형근 화백이 인생을 살며 느낀 여러 감정, 제임스 터렐이 오랜 시간 중요하게 여긴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저는 예술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 작품들이 관람객들에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들의 작품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합니다.
명상하듯 감상하는 작품이라는 데서 출발해 두 예술가의 작품을 비교해보았는데요. 친근한 재료를 가지고 중첩의 원리를 이용해 예술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업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는 관람객들이 작품에 더 편히 접근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고 여러 겹의 물감과 빛이 쌓여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미묘한 형태는 시간을 들여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예술가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술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도 인생을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지, 당신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말이죠.
일련의 과정들이 제게는 예술 작품을 매개체로 하는 명상처럼 느껴졌는데요.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발길을 붙잡고 자신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또 다른 행운을 찾기 위해 미술관과 갤러리로 전시를 보러 다니게 되는 것 같은데요. 행운과 같은 작품을 새롭게 만나면 ’명상하듯 감상하는 예술 작품 2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