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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봉구의 대화

-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따뜻한 비밀 대화

by 수요일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 여주가 고양이(쏘냐)에게 대화하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써본다.


오빠가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 강아지를 검정 봉다리에 넣어 안고 집에 들어왔던 날,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서 데려왔니?”

오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봉다리에 넣어왔으니까 이름은… 봉달이!”

봉달이는 그렇게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하지만 이름은 어느새 ‘봉구’로 바뀌었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치 처음부터 그 이름이었던 것처럼, 봉구는 봉구가 되었다.


어느 해, 오빠가 갑자기 먼저 하늘로 떠났다.

그날 이후, 엄마는 말이 없어졌다.

식탁에서도, 마당에서도, 빨랫줄 아래에서도… 모든 장면이 정적이었다.

어느 날, 나는 마루 창 너머로 정원을 바라보다가 멈춰 섰다.

엄마가 의자에 앉아 봉구를 무릎에 올려놓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봉구야… 네가 우리 아들이 데려온 선물이었지.”

“그 녀석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지, 넌 다 기억하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가버렸을까…”

엄마의 손이 봉구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봉구는 눈을 감고 엄마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의 말을 다 듣고 있는 듯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매일 봉구에게 말을 걸곤 했다.
감자를 심을 때도, 장독을 열 때도, 국을 끓일 때도, TV를 보면서도.

“봉구야, 올해 고추가 잘 될 것 같아?”

“봉구야, 니 오빠도 이 배추된장국 참 좋아했었는데… ”

“봉구야, 오늘 마을회관에 가니까 다들 너 늙었다고 하더라. 근데 엄마는 네가 제일 잘생긴 개 같아.”

엄마는 진심 어린 부탁도 했다.

“봉구야, 제발… 엄마보다 먼저 가지 마. 혹시 가게 되더라도... 몰래 가. 엄마는 그런 거 못 봐 …”

봉구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대답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었다.

햇살 좋은 날에도, 비바람 부는 날에도.


오빠가 떠난 지 정확히 2년이 되던 날,

봉구는 조용히 사라졌다.

아침까지도 엄마 곁에 누워 있었던 봉구는, 정오 무렵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동네를 돌고, 골목을 찾고, 뒷산을 오르며 아무리 불러도 봉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는 말없이 며칠을 앓았다.

“얘가… 이렇게 갔구나…”

엄마는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흘렀다.
겨울이 지나고, 정원 끝 한 모퉁이를 정리하던 날, 삽날에 무언가 걸렸다.
작은 땅무더기 속에서, 봉구가 입던 노란 꿀벌 무늬 옷이 조심스레 접혀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엄마는 그 옷을 꺼내 들고,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 그래, 약속 지켰구나. 엄마한텐 안 보이고 가기로 했지…”

봉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의 말을 기억했던 것이다.

엄마가 또다시 눈앞에서 이별을 보지 않도록,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매일매일, 엄마는 봉구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
그리고 봉구는 그 말을 정말 알아들었을까?

그 순간,
엄마는 아주 짧은 찰나일지라도
하늘로 먼저 떠난 오빠의 목소리를
봉구의 조용한 숨결 사이에서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분명히, 엄마와 봉구만이 나눌 수 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따뜻한 비밀 대화였을 것이다.


지금은, 엄마도 오빠와 봉구가 있는 하늘로 갔다.
나는 그들이 모두 다시 만났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 오래된 속삭임을 다시 도란도란 나누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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